태고보우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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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보우 선사
  • 관리자
  • 승인 2009.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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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의 성좌들6

1) 머리말

우리나라 불교의 정맥인 조계종의 종조가 누구이냐에 관해서는 한동안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어왔고, 그중 태고국사를 두고 대립이 있어 왔다.

아직도 종조 종통에 관해서 학계에서 이론이 분분하거니와 여기서는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다만 조사의 발자취만을 중심으로 그 커다란 그림자를 더듬어 보는데 그치고자 한다.

2) 출생과 시대

태고국사는 고려 충렬왕 27년 구월 21일 탄생하였다. 법명은 보우 태고는 호이며 시호는 원등국사이다.

홍주 사람이다. 모친이 꿈에 해가 배를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잉태하였다고 한다. 국사의 생존연대는 고려 충렬, 충선, 우왕에 이르는 고려 말엽 81년이였으니 나옹스님과 거의 동시대다. 이 기간은 중국에서 원의 세력이 점점 약회되면서 명이 일어서기 시작하고, 또한 고려는 원의 속국이 되어 지배를 받고 있던 때여서 뒤에 명이 강성해 지자 원과 명 사이를 두고 어려운 외교관계를 겪던 시정이기도 하다. 고려 말년에 국세가 떨어지자 일본 왜구의 침해도 심해서 남서 해안은 물론 내륙까지 심히 어수선한 때였다.

3) 수도하던 시절

국사가 출가한 것은 13세다. 처음 양주 회암사에 가서 광지선사를 섬기고 출발했다. 26세에 화엄선에 합격하고 하루는 “내가 이와같이 경공부만 힘쓴다면 이것은 고기를 잡는 통발장만 함 밖에 더 되는가? 옛 대장부들은 서는곳마다 뛰어났거니 나는 이 무슨 꼴이냐!” 하고 모든 인연을 끊고 참선공부에 나섰다. 용문산 상원암과 성서의 감로암에서 용맹정진을 거듭하며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정진에만 몰두하였다.

37세가 되는 충숙왕 6년 불각사와 전단원에서 ‘無子’ 화두를 앞에 놓고 결사적인 정진을 거듭해서 마침내 38세가 되는 다음에 정월 7일 새벽 활연대오하였다. 오도송에 이르기를

‘조주 옛 부처가 천성의 길을 끊었구나.

吹毛利를 눈앞에 비겨드니 온 몸이 빈틈이 없네.

토끼나 사자가 종적을 끊으니 몸을 뒤집어 사자가 나타났네.

굳은 관문을 타파하고 나니 청충이 태고를 불어 오누나.‘ 하였다.

4) 법을 받다.

국사는 다음해 소요산 백운암에서 지냈다. 아침 무극이라는 중국선객이 국사를 찾아왔다. 여러 이야기 끝에 말하기를 “중국 남쪽에는 臨濟正脈이 끊이지 아니해서 본분작가가 있으니 그중에 石屋淸珙화상은 임제직하 雪嚴적손으로 그 사람을 기다린지 오래라.”는 것이다. 국사는 이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고 곧 중국 갈 생각을 했다.

때마침 최하충, 김문귀 등이 국사의 도풍을 흠앙하여 삼각산 중흥사로 모셨다. 현학학도가 사방에서 모여 크게 법을 드날렸다. 이곳에 있는 동안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을 지었다. 이곳에서 지니기를 오년만에 원으로 건너갔다.

천자의 청으로 궁중에서 법을 연설하고 다음해 죽원성선사를 남소로 찾아갔다. 이미 성선사가 입적하신 후라 그에 제자가 선사의 삼련법을 사에게 내놓았다. 삼련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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