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相)이 상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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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相)이 상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
  • 관리자
  • 승인 2009.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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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 법단

  금강경 제 5분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에 보면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묻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몸 모양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그러자 수보리 존자는  "못 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몸 모양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오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바 몸 모양은 곧 몸 모양이 아니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길  "무릇 있는 바 상은 다 이것이 허망히니 만약 모든 상이 상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이것은 반야심경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이몸도 그렇고 32상 80종호를 구족하신 지혜덕상인 부처님도 우리가 보는 한은 형상적인 것이며, 오온개공(五蘊皆空)인 것입니다. 이렇게만 알아도 여기 금강경에서 말하는 신상(身相)이 신상이 아니다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이해했다고 하지만 이해한다는 데에는 참 부끄러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런 대문을 읽고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형상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남의 평가에 메이지 아니하고, 세상이 가져다주는 그러한 이론에 매이지 아니하고, 참으로 신상이 신상이 아닌 참된 저의를 알아야 하겠다고 하는 용기를 내봤던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보다 큰 목적을 행해서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자기 희생을 해서 오히려 더 통쾌하도록 큰 해방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그마한 자기에 매달려 있던 자기에서부터 해방되어서 자기 생명의 깊이 있는 큰 것에 순응헤서 억압을 제거하고 그 큰 것이 나타났기 때문에 자기 가슴 속에서부터 시원하고 통쾌하고 보람있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너무나 고물고물하고 사소한 일에 매달려서 생각해야 할 지혜, 지혜에 의한 결단, 그 결단에 의한 행동과 용기가 과연 있었던가 하고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신상(身相)이 신상이 아니다."  이 말은 "육체가 육체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질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와 물질 가운데 갇혀 살고 있는데 육체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물질이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육체의 논리가 있고 육체의 품위가 있고, 육체가 가지는 법칙이 있습니다. 또 자연물질도 그렇습니다. 물질도 그런 법칙대로 움직입니다.

  일체개공(一切皆空)

  육체가 육체가 아니요, 물질이 물질이 아니요. 말하자면 신상이 신상이 아니요. 신상에 매여 있는 현상과 저 물질에 매여 있는 생각, 거기서 보니까 그 법칙이 통하지 그 생각을 치워버리고 또 그 깊이 있는 자기 생명 깊은 곳에 눈을 다르게 즉 다른 자리에 앉아서 볼 것 같으면 공(空)하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매이고 일체에 꼭 매여 있는 입장에서 보니까 철저히 요지 부동한 법칙이 거기 서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조금 깊이 있는 곳에서 이 육체에서 탈피하고 감각에서 탈피하고 물질에 매이는 데서 벗어나서, 또 마음을 쉬어서 자기 깊은 곳에 앉아서 눈을 비춰보면 이제까지의 생각이 다 환이며 꿈에서 머물러버린 것 같다는 말을 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중심이 돼서 나를 움직이고 았고, 내가 가지고 움직이고 았는 가치에 대해서는 보다 많이 붙들고 좀 더 이익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아닌가 합니다.

  "신상이 신상이 아니다."   " 육체가 육체가 아니다."   "물질이 물질이 아니다."   좀 더 깨달은 눈에서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온갖 감정, 이해타산, 마음에 가지고 있는 채우지 못한 것, 이것을 분별해 가지고 온갖 증오심을 품기도 하고, 온갖 대립감정을 가지고 온갖심술을 부려가면서 알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인간세계입니다.

  그런데 이 몸 자체가 원래로 몸이 아닌 것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간이 세간이 아닌 것을, 하물며 그 안에 이 생각 저 생각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했던 감정들이 다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기에 매여서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이 세계는 감각적인 것이고, 감정적인 것이고, 물리적인 목적이고, 육체적인 것, 그 모두가 깊이 있는 자기 생명의 바탕에서 보면 그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관세음보살은 한마디로 "오온개공" 이라고 해버렸지만 정말 없는 것입니다.

  사실 금강경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서 이 몸을 가지고 부처라 하겠느냐 했을 때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말씀에 신상이 신상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 대문은 과연 부처님이 있어 그러하듯이 우리 자신들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는 의식의 차원을 뒤집어 엎어 놓은 것입니다. 가치관을 뒤엎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퍽 중요하다고 봅니다.

  금강경 사구게

  금강경 사구게(四句揭)라고 해서 부처님의 핵심되는 법문이 담겨져 있는 네 마디의 글이 있습니다. 사사구게라 해서 금강경 안에는 네개의 사구게가 있습니다.

  첫째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있는 바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닌 줄 보면, (상 아닌 줄 알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니라.

  둘째 것은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知我說法 如筏兪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내가 설한 바 법을 뗏목으로 비유한 바와 같다고 아는 자는 법도 오히려 마땅히 버리거든 하물며 법 아님이겠는가.

  세 번째가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나를 형상으로 보려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여래는 보지 못하리라.

  그 다음 네 번째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形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함이 있는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첫째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여기 형상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 밖에 있는 물질적 현상과 우리 마음 가운데 그려져 있는 생각, 심상까지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아는 것입니다마는 어떤 것이고 형상 있는 것은 바로 몇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몇 가지 요소들이 결합해서 이 몸도 이루어지고 물질도 이루어지고 자연현상도 이루어집니다. 모든 형상 있는 것들. 그것은 모두가 그렇게 화합한 물건이기에 돌이켜 볼 것 같으면 없는 것입니다. 그물로 만든 사자 이야기가 화엄경에 나옵니다마는 그물을 보면 사자가 안 보이고 사자를 보면 그물이 안 보입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시멘트나 모래, 혹은 나무나 그 밖에 금속장식이나 이런 것들을 결합해서 집을 만드는데 그런 장식 하나하나를 봐 버리면 집이 없는 것입니다. 집이 있는 그대로 보면 결합한 것이지 그러한 부속대로 나누어 보면 집은 없는 것입니다.

  원래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그런 것이고 또 우리가 의식하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보는 것은 망견에 의한 망식인 까닭에 또한 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보면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또 모든 것은 변합니다. 끊임없이 변화의 과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도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늙음을 향해서 죽음을 향해서 가는 것이 마치 더운 물을 떠다가 바깥에 두면 잠시도 쉬지 않고 식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쏘면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처럼 모든 난자, 생긴 자는 끊임없이 변해가고 멸을 향해서 내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정하게 만났던 사이라 하더라도 만난 데는 만드시 헤어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자정리(會者定離)` 로 잘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마는 사랑하는 자는 마침내 흩어지는 것이고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고, 난 자는 반드시 멸해지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바뀌는 것이고,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그 사람은 병 아니면 죽는다고 하는 소식을 듣는 것이고, 우리 주변에서는 이 변화과정을 통해서 끊임없이 허무를 실현해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사실 눈으로 보는 것이 끈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참으로 믿을 수 없는 험한 세상이고, 그것을 분석해 보더라도 그 자체가 실이 없는 것이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몽땅 허무한 것이건만 우리들은 거기에 매달려서 우리들의 허물을 모릅니다.

  그래서 미움과 원망과 대립과 투쟁, 온갖 짓을 하지요. 허무를 안다고 하지만 앞에서 본 "신상이 신상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오온은 공이다."  이것을 밀로만 알고 있지 속으로는 그렇게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로만 허무하다 그러지 제대로 자기 마음 가운데 새로운 갈등이 생기고 갈등을 토대로 해서 병이 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을 보더라도 그분은 장사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착하고, 집안에서도 재정적인 토대를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집안이 편안했으면 좋았을텐데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남편과 뭔가 통하지않는 부분이 생겨서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마침내는 집을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며칠 만에 들어 오는 날이 잦아지자 그야말로 말할 수 없는 원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비록 돈은 있었어도 돈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고 온 집안이 갈등뿐이었습니다. 남편이 집에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이 갈등이 쌓여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몸이 불편해져서 병원에 갔더나 가슴 아랫배에 물집 같은 것이 별안간 생겼더랍니다. 의사는 암이라고 하며 거의 치유가 어렵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 분 주위에는 불교 믿는 사람이 있어서 "당신이 이 병을 고치지 못할 바에야 살아 있는 동안에 집안 사람들과 감정을 다 풀고 죽어야 한다. 죽기 전에 풀지 못하고 죽으면 고통스럽다. 이왕 그 병을 못 고친다고 하니 차라리 감정이가도 풀고 가라."고 권하더랍니다.

  그 사람도 그때까지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그래 봤는데 마침내는 이렇게 죽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생각을 돌렸던 것입니다.

  놓는 자만이 크게 얻는다

  `그래 죽을 바에야 다 놓고 가자.`  그렇게 생각이 들자 며칠 만에 들어온 남편한테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냉전이 아니라 역전이 벌어질 판인데 오히려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 앞에서 자신의 얘기를 터놓았습니다.

  "병원에 가 보니까 아런 병이 걸렸다더라. 이젠 못 고치고 얼마 안간다고 하더라. 그런데 당신과 원수처럼 살아서야 되겠는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좋았던 것처럼 그렇게 지내고 싶다. 앞으로는 더 이상 당신이 하는 일에 참견을 하지 읺겠다. 그동안 당신한테 고통스럽게 대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쌀쌀맞게 했다. 그동안 내가 정말 잘못했다."

  그러니까 오히려 남편이 당장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오죽 속을 썩였으면 그렇게 되었겠느냐고 하면서 사과를 하고, 그야말로 그 동안의 미움도 사랑도 다 놓아버리고 정말 인생의 휘날레를 맞이할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놓고 보니까 계란같이 뭉쳐있던 암이 없어졌습니다.

  두 달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던 그 암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결국 이 몸뚱이는 감정의 뭉텅이입니다. 그것이 미움이라는 독소를 품고 감정을 더욱 격화시킬 때 제 몸뚱이가 여기저기 그런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죽는데 뭘 생각해` 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때 남편도 마음 속이 납작해져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하고 그렇게 되니까 그 때부터 모든 것이 풀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문동 사시는 어느 분은 거의 십 년 동안 소화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중풍이 들어서 드러누웠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내가 잘못했소."  하고 사과를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사과 한마디에 십 년 동안 위장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병이 단번에 나아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허망하게 서있던 그 자리를 펑 깨버리는 방망이입니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봐서 만약 분노의 감정과 대립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의 이 법문을 비춰서 탁 놔버려아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즉 모든 상이 다 허망하니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모든 상인 상 아닌 줄을 알 것 같으면 곧 여래를 보리라. 모든 상. 모든 형상이 상 아닌 줄을 보면 여래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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