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둘러싼 산과 산이 곱게 물들었다. 북한산이나 관악산의 단풍을 생각하지 않아도 남산 기슭의 단풍도 사뭇 눈에 든다. 산봉우리에서 계곡을 따라, 혹은 불붙듯이 타오르기도 하고 혹은 산등에서 산등을 이어 황금의 물결을 연상케도 한다. 가까이 가노라면 단풍은 뿔나무나 단풍나무나 동백나무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나무, 땅에 깔린 풀 그리고 땅 속에서부터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을 본다. 만상은 이렇게 왕성한 여름을 결실로 맺으면서 아름답게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일까. 조락이라는 한 철의 매듭을 이렇게도 황홀하고 찬란하게 장식한단 말인가. 온갖 생각에 그 속을 우굴부굴대는 이 범부의 심정이 부끄럽기만 하다. 인생의 연륜을 보태면서 이 자연의 조락의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
만상은 이렇게 결실을 준비했고 한 계절이 바뀜을 이렇게 황홀하게 자신을 장식한다.
가을에 서서 가을을 생각하며 인생의 가을을 생각케 하는 이즈음이다.
♣ 초하루는 추석, 우리의 마음을 저 먼 옛날로, 소년의 신화시절로, 그리고 꿈같은 태고시대로 이끌어 간다. 햇밤, 햇과일, 햅쌀로 빚은 떡, 그리고 새 옷, 많이나 달라져 보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 그 표정, 그 인사말 속에 우리의 추석도 한결 익어 간다. 차례를 지내고 다시 할아버지 산소에 이마를 조아린다. 흙내, 잔디 내음, 그리고 산들바람을 통하여 얼굴도 모습도 알 수 없는 태고적으로 이어진 할아버지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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