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백제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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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백제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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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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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 17

송주(誦呪)로 중생 제도한 다상(多常)

백제에서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상(多常)스님은 일본 화주(和州) 고시(高市)의법기산 절<法器山寺>에 늘 머물고 있었다.

그는 항상 대승경(大乘經)의 신주(神呪)를 지송(持誦)하여 중생 제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어느 대승경의 신주인지는 자세치 않으나, 중생을 이익되게 제도하겠다는 원력이 지극하여 매우 신묘(神妙)한 영응력(靈應力)을 얻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어떠한 불치의 병도 그의 신주(神呪)의 힘 앞에는 물러갔다. 완전히 삶을 포기한 죽음 직전의 환자도 다상스님은 송주(誦呪)하여 반드시 살아나게 하였다.

그래서 다상스님이 거처하는 그 절에서 찾아오는 병자들로 언제나 문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늘 둔덕 위에 두 개의 석장(錫杖)을 세워두고는 경행(經行)을 할 때에는 두 석장을 다 사용하였는데, 그 신묘한 작용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그에게는 기이한 일이 매우 많았다. 그의 그러한 신통력과 중생 구제에 감동한 당시의 일본 천황인 여왕(推古女王인 듯함)은 다상스님을 존중하여 공양을 올렸다. 그는 지극한 수행과 중생제도의 자비원력을 진실되게 닦은 공덕으로 그와 같은 신비로운 힘을 얻어서 많은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국왕이나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그 이름을 길이 남겼으나, 그 밖의 행적에 관하여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물론 그가 머물었던 법기산 절에서 일생을 마쳤겠지마는, 언제 입적하고 어떠한 제자들을 두었는지는 알 수 있는 자료가 남겨진 것이 하나도 없다.

<本朝 古僧傳 巻46>

자비행 실천의 방제(放濟)

언제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일찍이 일본에 건너간 방제(放濟)스님은 비후(備後) 삼곡군(三谷郡)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백제가 이웃나라의 침범을 받게 되어 일본에 구원병을 요청하였으므로, 그 삼곡군의 군주(君主)가 일본 왕명으로 구원병을 이끌고 백제에 가게 되었다. 방제스님은 그때 구원병이 백제에 가서 군공(軍功)을 거두고 돌아오면 절을 세우겠다고 서원을 발하였다.

과연 전공을 크게 거두고 개선해 왔으므로 군주와 의논하여 절 짓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불상 조성과 건물 등 단청에 쓰일 물감과 용구 일체를 구해오기 위해 경사(京師)로 갔다.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산 그는 돌아오는 길이 바닷길 이므로 배 한 척을 전세내어 타고 오게 되었다.

그는 그 나루에서 어떤 사람이 큰 거북이 세 마리를 팔려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거북을 모두 샀다. 배를 타고 오는 길에 그 세 마리의 큰 거북이를 바다에 놓아주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갔다.

뱃길이 멀어서 깊은 밤에도 배는 곧장 앞으로만 저어갔다. 뱃사공이 배에 실은 방제스님의 물건이 값나가는 것임을 눈치채고는 저희들끼리 몰래 의논하여 방제스님을 해치기로 하였다. 배가 육지에 닿기만을 기다리며 졸고 있던 방제스님은 뱃사람들에 의해 번쩍 들려서 깊고 어두운 바다 속으로 내동댕이쳐지게 되었다.

물 속으로 던져진 방제스님은 아예 살기를 단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우적거려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삶을 포기해 버린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몸이 바닷물 위로 떠오르는가 했더니 나무배 보다도 더 튼튼한 무엇이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보니 조금 전에 놓아주었던 세 마리의 큰 거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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