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는 예천이 그만큼 보수적이고 전통의식이 강한 곳임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김치가 없으면 먹지 못하겠다고 버팅기는 고집, 아니 하루 밥 세 끼 먹으면 됐지 뭘 사묵노? 하는 완고함이 전통적인 예천의 민심일지 모르겠다.

살기 좋은 고장을 표현할 때 흔히들 물 좋고 인심 좋은 곳이라고 한다. 이 달에 찾은 예천은 예로부터 물맛이 단술처럼 감미롭다는 글다 그대로의 예천(醴泉)이니 물이야 달리 말할 필요가 업고 그 물을 자양으로 살고 잇는 사람들의 인심 또한 넉넉하고 후박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수안보에서 이화령을 넘고 문경을 지나야 다다르는 곳이 예천이다. 굽이굽이 산으로 바람막이를 세웠건만 어디서 불어오는지 활소바람이 거칠기만 하다.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영주를 향해 가다가 왼편으로 난 소롯길을 따라 한 10킬로미터 들어가면 용문산이 나온다. 경기도 양평에도 용문산과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명찰 용문사가 있지만 여기도 용문산에 용문사다.

창건시기도 엇비슷하고 창건주도 중국 유학을 다녀온 선승이란 점에서 같다. 양평 용문사 창건주가 성주산문 무염 선사의 제자로서 해동사무외(海東四無畏)의 한 분으로 꼽히는 대경여엄 스님이라고 한다면, 이곳 예천의 용문사는 『삼국유사』에 인근 희방사의 창건주로 기록된 두운 스님으로서 이 스님은 사굴산문 범일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중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선지식이다. 돌아와서 아마도 선수행을 일관한 듯, 보이는 기록마다 토굴에서 수행했다고 쓰여 있다.

이 스님께서 처음 창건한 연대는 870년 경, 스님이 지금의 절 어귀에 서 있으니 용이 나타나 스님을 영접했대서 용문사라고 한다. 그 뒤 고려 태조 왕건이 두운 스님을 기리며 중수하였고, 1171년에는 조응 스님이 퇴락한 절을 다시 중수해서 지금 절 앞에 세워진 중수비를 세웠다.

이 중수비에 의하면 이곳에서 전국의 구산선문 스님 오백여 명이 모여 담선회(談禪會)를 갖기도 하고 삼만승재(三萬僧齋)를 열고 대법회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대찰의 면모는 1835년 큰 화재가 일어나기 이전까지 계속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