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족계(具足戒) 수계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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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계(具足戒) 수계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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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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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의 길

만물이 생동하고 초목이 다투어 꽃을 피우는 시절에 가벼운 바람 한 자락이 꽃잎 무성한 나뭇가지를 스치면 바람 지난 뒤를 따라 꽃비가 내린다. 온갖 꽃이 온 도량을 장엄하니 화엄(華嚴)이라 할 만하다. 다만, 진짜 화엄이란 나 자신이 한 송이 꽃이 되어 법계를 장엄하고, 온 법계가 동시에 한 송이 꽃을 장엄하는 것이 아닐까. 수계라고 하는 것도 그럴 것이다.

2000년도에 지리산 실상사로 입산하여, 이번에 직지사에서 봉행된 구족계 수계산림(4월 2일~8일)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니 햇수로는 8년이 걸린 셈이다. 옛 스님들은 10년 넘게 행자생활을 한 분도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종단에서 정한 과정을 가급적 빨리 이수하는 쪽으로 풍토가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스님께서는 남들은 금방 계를 받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물어오기도 하셨다.

교단에서 의미상 미성년자인 사미일 때는 4년 과정의 강원이나 기본선원 등을 졸업해야 하고, 은사스님으로부터 여러 지도를 받기 때문에 해야 할 과제가 뚜렷하다. 그러나 어엿한 출가수행자로서 비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구족계 수계는 출가수행자의 성년식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사미 과정을 마무리하고 비구로 출발하는 시점에서 목표와 과정을 뚜렷이 정립하지 않는다면 삶의 혼란과 퇴보는 불가피할 것이다. 아마 다른 스님들은 이미 오래 전에 ‘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마련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그 숙제를 붙잡고는, 수계산림 기간 동안 어떻게든 실마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었다.

출가란 육신의 한 생애가 지속되는 가운데 과거의 삶을 과감히 버림으로써 새로운 생애를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은사를 의지하여 태어나므로 부모가 바뀌고 가문이 바뀌며, 이름이 바뀌고 삶의 총체적 문화가 바뀐다. 과거의 삶은 탐진치의 거센 흐름에 맡겨져 표류하는 ‘중생놀음’이다. 이 중생놀음을 끝내는 것이 진정한 출가일 것이므로 출가의 완성은 곧 깨달음이고 성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세간을 뛰어넘는 것이 출가이지만, 나의 근기는 그런 출가를 단박에 성취할 만큼 뛰어나지 못하므로 먼저 몸으로, 모양을 따라 출가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구족계를 수지하는 것은 이 시작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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