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知足)선사의 시사(試師)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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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知足)선사의 시사(試師)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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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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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 만세 여성불자 만세

  동지섯달 기나긴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제진(濟珍)』─

  조선 중종 때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학자 문인들이 대거 출현하기 시작하였으니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기철학(氣哲學)을 주장하여 이철학(理哲學)에 빠져있던 기존의 성리학에 새로운 각성제 역할을 하였는가 하면, 토정 이지함선생이 명리학을 펼쳐 이기(理氣)의 관념론에 치중한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파문을 일으킴과 동시에 피지배계급을 대변하는 운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애 유성룡을 비롯하여 율곡이이 같은 이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조선의 정치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기쳤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위대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율곡선생의 어머니이신 사임당 신 씨다.  이 분은 오늘날의 우리 현대여성들에게도 존경과 부러움, 귀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분이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에서 제대로 이름을 드러내 놓지 못하고 있는 휼륭한 여성들이 많았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조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었다.  엄격한 유교의 윤리가 여성을 남성에 귀속시켜 버린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인 황진이만 하더라도 생몰연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시인으로서 만일 그가 남성이었다면 과연 생몰연대가 정확히 기록되지않았을 리 없다.

  황진이는 일명 진랑(眞娘)이라고도 하며 16세기 조선조 중엽의 유명한 시인이자 명기(名妓)다.  기명(妓名)은 명월(明月)이며 진사의 서녀로 태어나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시와 서예와 음악에도 뛰어난 여류문인이다.  게다가 그녀는 출중한 미모를 갖추었으므로  그로써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기녀였던것은 아니다.  열다섯 살 나든해 이웃집 총각이 자기를 사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로 인해 기계에 투신하여 문인들과 거유들을 상대로 시서를 논하고 그들을 매혹시켰다.  특히 벽계수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탁월한 시상을 바탕으로 그녀의 애정관을 표현한 시는 유명하다.

청산리 벽계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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