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신라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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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신라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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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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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22)

지명과 담육

(1)지명(智明)법사:

삼국사기(三國史記 卷4)의 진평왕(眞平王) 7년(585년) 7월조에,

고승지명이 구법코자 진나라로 들어가다. <高僧智明 入陣求法>

라고 있으며, 진평왕24년 (602년) 9월 조에는,

고승지명이 중국으로 사신갔던 상군을 따라 돌아오다. 국왕이 지명스님의 계행을 존경하여 대덕으로 삼다.<高僧智明隨入朝使上軍還 王尊敬明公戒行 爲大德>라고 하여 있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卷2)에도 지명법사에 관하여 전하고 있는데, 여러 마디로 수식한 문장 때문에 비록 글 줄<行數>는 많아도 그 내용은 위의 경우와 똑 같다.

그러므로 지명법사가 진평왕7년에 구법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17년만인 24년에 귀국한 그 동안, 그가 중국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가 중국에 갔을 때에는 진(陳)나라였으나 오래지 않아 수(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으므로, 그는 수나라에서 공부하다가 귀국한 것이 된다. 그가 귀국하자 신라의 진평왕이 그의 계행(戒行)을 존중하여 대덕(大德)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미루어, 그가 지계(持戒)와 덕행(德行)이 뛰어난 고승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중국에 들어갔을 때와 귀국하였을 때의 단 두 번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마는, 그 두 번 모두 삼국사기에서는 ‘고승 지명(高僧智明)’이라 하여 있다. 중국에 가서 불교학을 깊이 공부한 훌륭한 고승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나, 그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사분율 갈마기(四分律羯磨記)’ 1권을 남긴 것으로 보이고 있어서, 계율학<律學>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義天: 1055~1101)의 편찬인 ‘신편제종교장총곡(新編諸宗敎藏總錄)’ 권2의 사분율(四分律)조에, 지명술(知命述)로 갈마기 1권(羯磨記 一卷)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그 글 <羯磨記>이 전해져 있지 않으므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가 중국에서 율학을 전공하였던 것으로 볼 수가 있다고 하겠다.

(2)담육(曇育)법사:

같은 삼국사기 진평왕 18년(596년) 3월에 조에, 고승 담육이 구법하고자 수나라에 들어 가다. <高僧曇育 入隋求法>라고 있다. 여기에 이어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치다.’ 라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때 담육이 그 사신이 가는 배를 함께 타고 수나라로 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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