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잖아 죽어갈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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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잖아 죽어갈 것은 …
  • 관리자
  • 승인 2009.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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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사는 자연

내 고향은 전라북도 고창이다. 일제시대 김성수 선생께서 열여섯이 되도록 자기집 땅 아닌 곳은 밟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바로 그 동네 그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맘때쯤 겨울이면 먼 바다위에도 눈이 쌓여 하얀 수평선이 눈발되어 넘실대고, 육지 깊숙이 들어와 파도치고 있는 포구너머 험한 산골에는 부안의 내소사가 아슴프레하게 보이기도 한다. 또 동네 어위 기나긴 오솔길을 따라 눈길을 이어보면 우리 고장의 명소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인 선운사 가는 길이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장 내 고향 고창 중에서도 우리 마을 ‘만돌리’란 곳은 일제시대 때 간척사업으로 생긴 동네이다. 총가구 수가 30여 호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마을이지만 여태껏 동네 사람들은 몇 대를 이어 성실한 땀으로 이 척박한 땅을 갚아 엎어 옥토를 일구고, 짬짬히 바다에 나가 일하는 식의 부지런을 떨며 반농반어의 생활을 유지해왔다.

워낙 오염이 되지 않은 바다여서인지 십여 년 전부터는 우리 마을의 앞바다에서도 그 까탈스럽다는 김양식이 시도되어 마을 사람들의 숙명적인 가난을 종지부 찍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김양식이 문제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잘 되어서 도시로 올라갔던 사람들마저 다시 불러들일 정도였던 이 김양식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게 수확이 줄고, 때론 사르기 타 죽어버리곤 했다. 아무런 원인도 발견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마을 사람들은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현격히 줄어들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김수확에 미련을 떨치지 못해 다시 시도하고 했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모여들었던 마을 사람들도 다시 떠나버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김의 떼죽음은 아직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채로 남아있게 되었다.

김의 떼죽음,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모든 것이 인과라 하지 않던가. 동네사람들은 은연중 이즈음 고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원자력 발전소를 의심해 보았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원자력발전소 덕에 정읍에서 이곳을 거쳐 영광에 이르는 비포장도로가 말끔히 포장되고, 서울에서 이곳까지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좋아라 했던 것이 얼마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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