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현장]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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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현장]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
  • 권현주
  • 승인 2009.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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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문 선풍(禪風)이 다시금 만개하리니

▲ 92년 가을에 완공될 요사채 불사 현장

세차게 불던 늦겨울 찬바람도 3월 남풍 앞에서는 한발 뒤서고 있는 이른 봄. 처처에 계신다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숨결을 좇아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에 자리한 법흥사(法興寺)를 찾았다.

희끗희끗 남아있는 잔설, 겨울의 여백과 두메산골의 나무내음은 봄 향기로 이내 달려오고 저 멀리 보이는 산사의 모습은 한결같은 반가움으로 일행을 맞이 한다.

잘 다듬어지고 확트인 시원한 가람터에는 힘차고 우렁찬 함성으로 우뚝 우뚝 보고(宝庫)의 기둥들이 솟아 오르고, 산봉우리 봉우리는 불성을 가득 담은 채 천여년 숨결로 펼쳐지는 불사의 현장을 늠늠히 지켜 보고 있었다.

차령산맥이 남쪽으로 뻗어와 강원도 영월에 사자산(獅子山)을 앉혀 놓고, 수려한 암봉과 절벽을 이루고 있는 연화봉(蓮花峰)아래 법흥사(法興寺)는 자리하고 있다.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 12년(643)에 자장율사(慈臟律師)가 당나라 수학 중에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수받아 귀국하여 이 곳 사자산 연화봉에 봉안하고 그 옆에 토굴을 만들어 좌선함으로써 법흥사의 역사는 시작된다.

▲ 구산선문 산자산파를 크게 이루어 놓았던 징효대사의 탑비(보물 612호)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창건 당시 흥령사(興寧寺)라 이름하였던 이곳 가람에 신라 제46대 문성왕(文聖王) 때 당(唐)에서 돌아온 도윤(道允)선사께서 흥령선원(興寧禪院)을 개설하여 통일신라 불교 특징인 5교9산(五敎九山)의 선문구산(禪門九山) 사자산문(獅子山門)를 이루어 큰 위용을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불사가 진행중인 하대(下臺)도량 위로 도윤선사의 제자였던 징효대사의 탑비(澄曉大師塔碑, 보물612호)가 있다. 이는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고려 혜종(蕙宗) 원년(944)에 세운 것으로 당시 융성했던 선원의 모습을 가늠하게 한다.

도윤선사의 법을 이은 징효대사(折中, 826-900)는 헌강왕(憲康王)의 존경을 받은 분이었으며 진성여왕은 그의 덕력에 감화되어 국사(國師)로 모시려 여러번 청하였다한다. 그러나 대사는 끝끝내 사양하고 납자로서의 용맹정진에 일념하여 사자산문를 크게 이룩하여 놓았다.

사자산문의 본가람으로 흥성했던 법흥사는 국운의 쇠퇴와 산세의 흥망으로 위용을 잇지 못하고 산중이야기로만 전해오다가 불과 10여년 전에야 비로소 불자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단다.

▲ 하대의 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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