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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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자리
  • 관리자
  • 승인 2009.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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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기억은 언제나 청지기 아저씨의 대문 두들리는 소리로 시작된다.
“참봉어른 오셨습니다.”

귀 익은 목소리에 우리는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오셨다며 신발을 신는 등 마는 등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풀이 선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가 점잖게 인력거에서 내려오신다.

“할아버지 오셨습니까.”

우리 형제들은 앞 다투어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린다.

“우이야”

할아버지는 ‘오냐’ 하지 않고 ‘우이야‘ 하셨다. 우이는 할아버지의 그 ’우이야‘ 소리가 듣기 좋았다. 온화하고 자애롭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듯한 ’우이야‘, 그 소리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 아득한 기억의 밑바닥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할아버지가 자리에 얹으시면 어머니는 술상을 들고 오신다. 하얀 사기 주전자에 담긴 소주와 소주잔, 그리고 편강 한 접시, 조촐하고 정갈한 상이었다.

술상을 대하는 할아버지와 그 앞에 다소곳이 앉는 어머니, 어머니 뒤에 숨어서 나는 할아버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할아버지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면 눈길도 그리로 가고, 잘 다듬어진 구레나릇을 쓰다듬으면 좋아라 하고 재미있어 했다.

맑은 피부와 준수한 인물, ‘옥골’이라는 표현은 그런 데 쓰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높은 분이셨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동행한 분에게 “예” 하는 것을 보고 늘란 적이 있는데, 그 분에게도 공대를 해야 하는 어른이 계시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이니 할아버지는 내게 눈부신 존재였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할아버지가 아니 계시다. 남편도 나도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을 필요로 하는 사춘기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한번도 “할아버지!” 라고 불러 보지를 못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지만, 그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서운함보다 할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 안쓰럽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하고 올라가는 사다리가 할아버지 대에서 둑 끊어진 듯한 허전함.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만으로 그득한 존재이다.

언젠가 전동차에서목격한 일이다. 젊은이들이 주윗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끌벅적하기에 눈살이 절로 찡그려졌다,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자세가 곧은 노신사가 젊은이더러 말을 했다.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하지 않겠소.”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젊은이들이 가타부타할 여지가 없을 만큼 그 할아버지는 당당하고 의연했다. 노인들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요즈음, 젊은이들을 타이르고 노인의 위상을 되찾은 그 할아버지가 참으로 돋보였다.

할아버지는 당당해야 하고 우리를 받쳐주는 기둥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분들은 바로 몇 년, 몇 십 년 후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계주:경북 청도 출생. 992년 수필고원으로 등단. 1999년 현대수필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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