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것들은... 기어이 외로운 것들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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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것들은... 기어이 외로운 것들 쪽으로
  • 관리자
  • 승인 2009.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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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외로움을 쉬는 곳, 땅끝의 하늘 꼭지점 해남 달마산 도솔암
▲ 해남 달마산 도솔암

행복과 해탈의 첫 열쇠, 지족 (知足)

눈 쌓인 달마산은 백색이되 백색이지 않고, 백색이지 않되 백색이었다. 백색인 것은 온 산을 덮은 눈에서 오는 것이었고, 백색이지 않은 것은 남해바다의 새파란 물빛이 올려 보낸 것이었다. 이런 날 아이젠을 차고 달마산을 오르는 것은 복되다. 백색의 옷을 입었으되 백색이지 않은 달마를 뵙기도 어렵거니와 새파란 바다를 입었으되 백색의 법신으로 화현해 있는 달마를 뵙는 것 또한 희유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비·희·사(慈悲喜捨). 이럴 때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오히려 사(捨)에 가깝다. 사(捨)는 버린다는 뜻이다. 자기잣대로 남을 재는 것을 버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의 잣대를 통째로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른 색깔을 일체 배제하면서도 다른 색깔과의 친화력이 가장 높은 백색의 달마산은 희(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淨)하고, 자(慈)와 비(悲)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순백의 무소유처인 것이다.

오늘처럼 흰 눈 펑펑 내리는 날 해동의 달마는 달마산에서 무슨 법문을 하고 있을까? 그야 당연히 지족(知足)일 터이다. 나는 지금 도솔암을 오르고 있고, 도솔의 다른 이름이 지족이기 때문이다.

지난밤에도 나는 달마산 도솔암의 모찰(母刹)이자 전진캠프인 미황사에서 도솔을 거닐었다. 불교에서 도솔은 도솔천을 가리키고, 도솔천은 욕계(欲界) 6천 가운데 4천인 지족천을 이른다. 지족천은 ‘만족함을 아는 세계’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지족천을 욕계 6천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세계로 친다. 그리고 그 지족천에 미래에 중생을 구원할 미륵불이 살고 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 또한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그곳에서 호명보살로 머물렀던 것으로 여긴다.

그런 영향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엔 도솔이란 이름이 들어간 것이 참 많다. 신라 향가인 도솔가를 비롯해 도솔봉, 도솔계곡, 도솔산, 도솔천, 도솔암 등 도솔이 호명하며 이끄는 세상은 우리 삶의 곳곳에 자국과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절집 이름에 도솔의 자국과 흔적이 들어간 곳은 더욱 많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태백산 도솔암, 지리산 영원사 도솔암, 파주 보광사 도솔암, 통영 용화사 도솔암, 울산 무룡산 도솔암, 그리고 여기 해남 달마산 도솔암 등이 다 그 지족의 도솔천에 경계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우리나라 반도의 최남단인 전남 해남 땅끝마을 지킴이 산인 달마산에 도솔암이 있는 것은 더욱 각별하다. 땅끝은 땅끝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보면 반도의 끝이지만 남쪽에서 보면 반도의 시작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남 달마산 도솔암은 끝과 시작의 꼭지점에 있는 우리나라 맨 끝의 절이자 맨 처음의 절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우리 4천만 중생들에게 자신의 처지에서 항상 만족함을 알고 살라는 부처님의 이생기심(而生其心)의 기초 메시지로 들린다. 항상 만족함을 알고 사는 지족이야말로 행복과 해탈의 첫 열쇠임을 가르쳐주는 부처님의 팔만설법의 키워드로 들린다.

더욱 고독해질 때 자유로울 수 있다

바다오리는 암벽이나 바위틈에 집을 짓고 산다. 달마산 도솔암은 1만 분의 부처님이 각각 어깨를 맞대고 앉고 서고 걷는 듯한 계면(界面)의 기암괴석 사이에 바다오리집처럼 터를 잡고 있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에 통일신라 말 의상 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전해 내려오는 자세한 연혁은 없다. 다만 명량해전 때 이순신에 패퇴한 왜구들이 달아나면서 불을 지르는 바람에 주춧돌과 기왓장만 남아 있던 것을 2002년 6월 현 주지인 법조 스님이 새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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