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유희[禪語遊戱]
청간당의 창호 너머 보이는 만수산도 그랬다. 경내의 몇 그루 커다란 감나무는 얼어버린 감을 그대로 달고 서있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해 보였다. 그 감은 가을엔 단풍보다 곱고 노을보다 붉어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영당 안에는 아무 것도 없고 오직 김시습(1435~1493)의 영정만이 덩그러니 걸려있다. 그의 삶만큼이나 군더더기 없는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개울 건너에는 자그마한 청간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방 한 칸에 다상만이 놓여있는 청아한 방이다. 청간(淸簡)은 김시습의 시호이다. 부여 무량사에는 당우 두 채가 그를 언제나 기억하도록 만든다.
영정은 쏘는 듯한 눈빛에 웃음기 없는 얼굴로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있다. 노소(老少)의 시절을 대표하는 자화상 두 점을 남겼다고 했다. 자찬(自贊)까지 더한 그림이 지금까지 전한다. 자화상에 자찬이라. 어느 누구도 자기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었을 게다. 스스로 자기 비문을 쓴 선사들도 더러 있으니 별스러울 건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을 자화자찬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학적이다.
네 형상이 이다지도 못생기고 (爾形至眇)
네 말은 이렇게도 어리석으니 (爾言大侗)
너는 개천구덩이 버려져야 마땅하다 (宜爾置之丘壑之中)
그는 무량사에 살아서 2년밖에 머물지 못했다. 이 곳에 오게 된 사연은 의외로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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