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 서울 삼각산 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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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 / 서울 삼각산 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
  • 관리자
  • 승인 2008.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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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년을 이어가는 산중 도심포교

 

강원도 묵호포교당 학생법회에 다니던 계호 스님(59세)은 당시 주지였던 혜거 스님(서울 개포동 금강선원 선원장)으로부터 『초발심자경문』, 『반야심경』 등을 배우고 참선 수행을 지도 받으며 신심이 다져지고 있었다.

묵호포교당에는 월정사에 주석하시던 탄허 스님께서 가끔 법문을 오셨는데, 고등학교 3학년(1967년) 여름 큰 법회가 열렸을 때도 귀한 법문을 해주셨다. 그때 마침내 발심하여 출가의 마음을 비추니, “능히 출가하여 큰 뜻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힘을 실어주셨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 삼각산 진관사로 출가하였다.

“절집 생활은 처음부터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좋았어요. 마치 전생부터 살아온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출가하고 한 달 후 속가 부모님이 저를 데리러 오셨어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요. 그런데 마음과 달리 아무 내색도 않고, 순순히 부모님을 따라 고향집으로 갔어요. 그리고는 그 날 밤 몰래 다시 진관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기를 두어 차례 하니, 제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아시게 되었지요.”

절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다는 계호 스님은 ‘천생 스님’이었다. 스님들 나이는 실제 보이는 모습보다 열 살쯤 위로 보아야 얼추 들어맞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계호 스님의 활짝 웃는 모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인다. 덕분에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만년 소녀 같은, 영원한 누님 같은 스님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갈하고 아늑한 비구니 수행도량

진관사는 월간 「불광」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1970년대 초 광덕 스님(초대 발행인)이 조계종 총무부장으로 있던 당시, 종단에 어려움이 있거나 고민할 일이 있으면 며칠이고 머물며 머리를 식히고 가셨다고 한다. 1974년 「불광」 창간 당시에는 진관 스님(진관사 회주)이 후원회원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시기도 했다.

서울 연신내 번화가에서 차로 10여 분 걸리는 진관사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헷갈려 할 정도로 길이 바뀌고 있었다. 은평 뉴타운 건설 시공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황량한 건설 현장을 벗어나 삼각산(북한산)을 잠시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울창한 산림 속 심산유곡이 펼쳐진다. 진관사에 들어서면 한눈에도 비구니 수행도량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갈하고 아늑하다.

진관사는 삼각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내 이름은 김삼순’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또한 서울에서 등산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지친 신심을 쉴 수 있어, 영화배우 엄앵란 씨를 비롯한 유명 불자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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