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 강호 고수가 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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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강호 고수가 되랴
  • 관리자
  • 승인 2008.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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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산엔 왜 가는가. 절이 있기 때문이다. 절엔 왜 가는가. 번뇌를 때려잡기 위해서다. 번뇌를 때려잡는다는 건 무엇인가. 깨침이다. 그래서 불가(佛家)엔 이런 속설이 있다. ‘상근기(上根機)는 깨쳐서 알고, 하근기(下根機)는 믿어서 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할까? 고백하건데, 나는 아직 깨침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고, 그렇다고 그 세상을 딱 믿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얼치기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선 나 같은 얼치기들이 가장 골치 아픈 치들이다.

이 얼치기들에겐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깨침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천천히, 나중에 깨치라면 원수가 될 정도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집념이 없다.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부족하다.

둘째는, 의심이 많다. 무엇이든 딱 믿고 들어가면 분명히 한 통(通) 하는데, 그걸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잘 나가다 중도에서 그치곤 한다. 조급증에 잔머리를 굴리다보니 배꼽 한 가운데서 스멀스멀 의심의 벌레가 꿈틀거리며 기어 올라온다. 이런 치들일수록 ‘나 죽었소’ 하고 이마 낮추고 딱 믿기만 하면 바로 통의 세계로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놈의 의심증과 자의식과 조급증 때문에 그게 ‘딱’하고 잘 믿어지질 않는 것이다.

도의 세계에서 볼 때 깨달음은 제도권 밖의 일이다. 그러므로 산문(山門)을 기준으로 삼을 때 산문 밖은 제도권이고 산문 안은 제도권 밖이다. 강호의 고수로 승단하기 위해선 그 제도권 밖으로 행군해야 한다. 솥으로 비유하면 단(段)의 세계는 용광로요 급(級)의 세계는 부엌 솥단지다. 부엌 솥단지로는 아무리 용 써봐야 생의 불순물을 제련할 수 없다. 펄펄 끓는 용광로에 인생의 잡석을 넣고 푹 녹여버려야 그 안에서 금도 뽑아내고 쇠도 가려낼 수 있다. 이것이 얼치기인 내가 틈만 나면 산을 찾고 절을 찾는 이유다.

사시사철 청안한 양택(陽宅)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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