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설법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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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설법의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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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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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양인의 불교관과 그 비판

서양사람이 불교를 연구한 것은 지금부터 150년 전의 일이다. 그때에 불교관은 가지가지였던 것 같다. 불교는 무신론이므로 종교라 할 수 없고 윤리 도덕 등 수양의 가르침이라고 한 자도 있었다. 또는 불교가 매우 합리적인 점에서 과학과 일치하는 종교라고 했다. 대승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는 불교를 철학이라고도 했다.

불교경전을 종교서라 하지 않고 윤리 도덕을 가르친 수양서라고 하는 설을 보면 이것은 서양에 처음 소개된 아함경에서 판단한 것이리라. 서양인의 기독교적 종교관에서 보면 조물주로의 신을 세우지 않는 무신론은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시불교 경전에는 예배대상으로서의 신이 없다. 부처님은 신을 예배하지 않았고 오히려 범천, 제석천 등 당시의 최고신이 부처님께 예배하였다. 법구경에는 윤이 도덕을 많이 말한다. 그래서 불교는 수양의 가르침이라고 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에 관한 불교와 기독교의 의견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백 년 전만해도 유신적 종교만을 종교라고 보았다. 불제자들에게는 예배대상으로 불.법.승 삼보가 확정되어 있었다. 모든 불교도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 법구경이나 그 밖의 원시경전에서는 많은 수양적 교훈이 설하여져 있지만 거기에도 도처에 귀의삼보가 설해 있다. 서양학자들은 이 점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부처님은 법으로써 깨달음을 이루셨고 법을 의지처로 하였으므로 부처님은 법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열반에 드실 즈음에 재가 신자들에 대하여는 무처님의 사기염처를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출가자에게는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의지처로 삼으며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법을 등불로 삼고 의지처로 삼아서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마라”라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법에의 귀의를 말한다. 부처님도 법에 의지하여 성불하셨으므로 법이 불교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법과 삼보에 귀의하는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는 오늘에는 없다. 다음에 원시경전에는 사성제 등 극히 합리적 교설이 많아 과학적 입장과 같으므로 불교는 과학과 합치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주장이 반드시 잘못은 아니다. 불교는 법을 설하지만 거기에는 인과관계 등 합리적 교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 이외의 면이 더 많다. 선악, 염정, 범성에 관한 면이 더 많다. 인과관계 면을 보더라도 과학에는 없는 삼세 인과설을 말하여 과학보다 범위가 넓다. 불교는 어떻게 있는가 라는 사실적 면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라는 가치면이 있지만 궁극의 목적은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므로 과학적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또 불교가 철학이냐에 대한 문제를 말한다면 부처님 당시에는 여러 철학설이 있었다. 본체론, 현상론, 실천론 등 다양했다. 그러나 불법은 합리성에 있어서나 논리성에 있어서나 완벽했다. 인도종교는 타지역 종교와 달라서 모두 철학 이론을 갖고 있다. 이 점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불교는 출발점부터 신앙실천의 기초로서 철학이론을 말한다. 부파불교나 대승불교에서는 더욱 철학 이론이 많아졌다.

서양학자들이 불교를 윤리 도덕설이라든가, 합리적 과학이라든가, 철학설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엉뚱한 말은 아니다. 제각기 불교의 일면만을 본 것이다. 불교의 기본인 법에는 교(敎), 인(因), 진(眞), 무아성 등의 특징이 있으므로 그 중에 교를 말하면 성(聖)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가 되고, 인의 면를 말하면 덕으로써 합리성을 말하는 과학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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