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선사의 호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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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선사의 호국관
  • 관리자
  • 승인 2008.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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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 호국불교

자유정신은 인간의 본성으로서만이 아니라 「만물 」로 표명된 일체존재의 생명으로 파악된다.

<1>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 ㅡ 만해 한용운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시집 「님의 침묵 」서문격인 「군말 」을 음미하게 된다. 불교적인 관심에서 만해를 말하려하거나, 시인 또는 국권부재의 참담한 식민주의 아래서 열열한 애국지사로서의 만해를 말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군말 」을 놓치지 않고 염두에 둔다. 사실 만해가 문자로 남겨 놓은 기록들은, 근대 한국의 자랑스러운 인물들 가운데서 질적 양적으로 가장 탁월한 업적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짧은 글속에 만해의 세계가 함축되어 있는 까닭이다.

「님 」의 일반적인 용례(用例)는 세속적인 사랑의 대상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국왕이 국권을 상징하고 대표하던 시대에 있어 「왕 」은 바로 「님 」으로 노래불려진 때도 있다. 그러나 만해의 「님 」은 그러한 세속적 피지칭물(被指稱物)로서의 님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기룬것 』은 『다 님 』이었던 까닭이다. 개인적이며 신변적인 「님 」의 일반론적인 개념을 특수화하고 근원화(根源化)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관점을 상정할 수 있다. 우선 만해는 아주 사소한 신변의 쇄사(鎖事)있에 있어서도 언제나 문제를 근원적으로 천착하고 그 문제가 결코 하나의 작은 일이 아님을 제시한 점이다. 사랑하는 님이라는 소극적이며 개인적인 관념을 부정하고 『기룬 것 』은 『다 님 』이라는 폭넓은 긍정의 세계를 형성해 준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적인 틀에 구속되는 『님 』은 함축적이며 다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 님은 중생과 석가, 나와 민족, 개인과 공동체, 나와 너, 빼앗는 자와 빼앗긴자의 구별이 없어진 자리에서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 』하는 님으로서 불이(不二)의 관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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