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敎化)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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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敎化)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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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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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팔상법문(八相法門)

이 글은 박경훈 著 “부처님의 生涯(생애)”를 요약하여 게재한 것임. 편집자 註

①교화의 거점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四十五년 동안 포교한 지역은 북의 사위성으로부터 동남쪽의 왕사성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북의 사위성은 갠지스강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왕사성은 중류를 벗어나 거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그 거리는, 경에 의하면 二 개월의 노정(路程)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 二개월의 노정을 왕복하며 교화하시었다.

이 넓은 지역 가운데서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곳은 사위성과 왕사성은 물론 카필라성과 베살리성. 녹야원이 있는 사르나트 · 바라나시 · 붓다가야 · 파타리푸트라 · 나란타 · 쿠시나가라 등이다. 쿠시나라가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으로 특별한 의의가 있는 곳이며, 베살리성은 부처님께서 특별히 좋아하신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을 향하여 최후의 여로(旅路)에 올랐을 때, 베살리성을 떠나면서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는 것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실 만큼 좋아하셨다. 이 베살리성과 왕사성과 사위성은 교화활동의 중심지였다.

②미륵불과 금루가사(金樓袈娑)

석가족은 남녀가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하는 풍속이 있었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카필라 성에 돌아와 법을 설하실 때도 석가족의 여자들은 설법을 들을 기ㅚ가 없었다. 그리하여 석가족의 여자들은 원망을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여자들의 뜻을 아시고 석가족의 남녀가 교대로 설법을 듣도록 핫U다. 그 때 부처님을 기른 마하아프라쟈파티는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듣게 되자 기쁨이 솟아 싯다아르타 태자가 출가한 이후 슬픔 속에서 잔 황금빛 천을 황금의 실로 꿰매어 한 벌의 금루가사를 만들었다. 마하아프라쟈파티는 금루가사를 가지고 부처님이 계시는 니그로오다 숲이 정사(精舍)를 찾아가 부처님께 바쳤다.

그러니 부처님은 이를 거절하시었다. 이 때, 아난다는 이 광경을 보고, 어린 부처님을 키워 준 공과 믿음이 깊은 점을 들어 마하아프라쟈파티의 청을 들어주시도록 권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보시의 공덕에 대해 설하시고 가사를 대중에게 보시하도록 권하시었다.

[개인의 은혜와 사사로운 정에 마음이 치우치면 그 복은 엷고 크지 못합니다. 저 대중에게 보시하면 그 과보는 더욱 클 것입니다. 가려서 보시하는 그 과보는 더욱 클 것입니다. 가려서 보시하는 것보다는 가리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마하아프라쟈파티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려 대중에게 보시하려 하였으나 아무도 화려한 가사를 입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 이윽고 미륵비구의 차례가 되었을 때, 미륵비구는 금루가사를 받았다. 금루가사는 그에게 잘 어울렸고 부처님과 같이 三十二상이 그의 몸에 나타났다.

미륵비구를 보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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