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신앙세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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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신앙세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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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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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세계

초발심시(初發心時) 변성정각(便成正覺)이라는 말은 화엄경에서만 나온다. 믿음이 만족하면 바로 발심주(發心住)가 되는 것이다. 발심주에 곧 발심하면 곧 정각을 이루는 도리가 있다. 부처님의 과덕(果德)과 내 마음이 똑 같다고 믿으면 발심주가 되는 것이다. 주(住)라 하는 것은 진리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주에 머무는 다음은 십행(十行)이다. 십행이 나오는 것은 주는 진리의 핵심이라면 행은 외각면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주에 치우쳐도 안 되고 행에 치우치면 도로 세속이 된다. 그러므로 행에 치우치지 말고 주로, 주로 치우친 것은 행으로 그렇게 하여 주와 행이 하나로 되는 것이 회향(廻向)이다.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 이렇게 해서 보살이 닦아가는 십지(十地)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화엄경의 수행은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 세간 사람은 할 것이 못 된다 하고 공포심을 낼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와 같은 박지범부(薄地凡夫 )를 대표하는 군상(群像)들이 나와서 여실하게 성취하는 과정을 보인 것이다. 선재동자의 일행은 오백 동자, 오백 동녀, 오백 우바새, 오백 우바이, 육천 비구 등 일만 팔천의 대중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박지범부다. 선재동자가 앞장이 되어 五十三 선지식(善知識)을 차례로 친견하고 일생동안에 광겁지과(廣劫之果)를 다 마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중생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낼 여지가 없다. 누구나 광겁지과를 일생 동안에 다 마치는 것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이 셋이 원래로 차별이 없다[心佛及中生是三無差別]하는 것이 화엄경의 도리이다. 누구든지 할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화엄경 도리이다. 이것을 못 믿으면 이것은 열기(劣機)라고 한다. 근기(根機)가 났다는 뜻이다. 이 도리를 믿는 중생을 대심(大心)중생이라고 한다. 대심중생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과 중생이 과덕에 있어 다르지 않구나 하는 것을 미는 중생을 말한다. 그러므로 통현론[通玄의 華嚴論]에 이르기를 [다른 경에게 혹 퇴전(退轉)하는 것이 있지만 이 화엄경에서는 퇴전이 아예 없다]고 말하였다. 절대로 퇴전이 없다고 말하였다. 절대로 퇴전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퇴전이라 하는 것은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불급중생(心佛及中生)이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퇴전의 여지가 있겠는가. 참으로 이 점이 화엄경의 독특한 경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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