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의 世界 (2) / 불교의 기본 입장
상태바
아함경의 世界 (2) / 불교의 기본 입장
  • 관리자
  • 승인 2008.0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3종외도설과 그 비판

 남아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히말라야 산맥으로 중국과 접경하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커다란 반도의 인도는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20여배가 넘는 큰 지역을 차지한다. 기후적으로도 온대, 아열대 등 매우 다양한 분포의 이 나라는 지금부터 5천년 전에 이미 문명이 시작되었던 고대 4대분화발상지의 하나임도 주지의 사실이다.

 방대한 지역과 다양한 기후대 그리고 유구한 전통을 지닌 인도사회는 부처님 당시에 이르러서 경제와 정치면에서 큰 변혁을 맞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농업경제에서 상업경제체제로 옮겨 가고, 왕권의 두드러진 부각에 의해 바라문지상주의(婆羅門至上主義)가 서서히 허물어져 가던 때였다. 이 변동과 아울러 인도의 사상계도 극도의 혼란기를 겪에 된 것으로 보인다.

 곧 범(梵)이라는 유일의 원리를 내세운 바라문사상과 그에 정면으로 대립하여 발흥한 사문사상가들은 주로 요소설을 주장하며, 서로 근본을 달리한 채 복잡하게 난립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탄생하여 구도의 길에 드신 부처님은 선정과 고행법 등 먼저 당시의 모든 종교사상을 정통으로 수습하여 각 사상의 진의를 완전히 파악하셨다고 한다. <中阿含204  > 그래서 아함은 비판의 형식으로 외도(外道, 불교외의 종교사상을 아함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의 소설(所說)을 언급하는 확신에 찬 부처님을 여러차례 그리고 있으며, 그런 대목은 고대 사문사상 연구의 권위있는 자료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외도에 관한 언급을 살펴보면 숫한 외도사상이 여러 관점에서 나누어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특히 우주의 궁극적 실체에 대한 여러 견해를 분류한 것이 있어 당시 인도사상계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곧 3종외도설로 불리는 것으로 간단하면서도 조직적인 구성은 우리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여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3종외도석의 첫째는 모든것은 유일신인 존우의 뜻에 의해 창조된다고 하는 존우화작인설(尊祐化作因說)이다. 둘째 견해는 유일신이란 초월적 원리의 상정에 반대하여 모든 것은 숙명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숙작인설(宿作因說)을 주장한다. 이들에 대해 세째로 모든 것은 특별한 원인이 없이 물질적 요소들의 우발적인 결합에 의해 일어난다는 무인 무연설(無因無緣說)이 제시된다. < 中阿含 券3 > 요즘의 사상적 경향으로 말하자면 바라문의 사상인 첫째 견해는 유신론으로, 그리고 사문사상인 둘째 및 세째 견해는 결정론과 유물론으로 각각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각 사상가들은 자기 주장과 다른 것은 허망하고 자신의 견해만 진리라고 내세우며, 각각의 입장에서 인생의 의미와 괴로움의 초극을 대중에게 설해 나갔다. 그러나 누구의 말이 진리인가를 구별할 확실한 기준이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자연히 심한 종교적 방황을 피할 수 없었다. 부처님도 출가 후 이런 방황을 겪었고 그래서 진리성 판단의 기준을 세운 뒤 세가지 견해에 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곧 우주의 근원에 대한 어떤 견해가 진리이려면 그것으로 인간을 포함한 우주 속의 모든 현상이 올바르게 설명되어야 할 것을 요청하셨다. 만일 어떤 현상은 잘 설명되지만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그것을 진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입장에서 부처님이 행하신 세 견해에 대한 비판을 아함은 3종외도의 소개에 이어 전하고 있다.

 먼저 첫째 견해부터 모순점을 일깨운다. 무릇 모든 것이 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인간이 죄를 지을 때 그 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그것은 당연히 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 죄도 신의 뜻에 의해 지어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죄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더욱 자가 당착으로 지적된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문제이다. 모든 일이 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인간에게 이렇게도 하려 하고 저렇게도 하려는 의욕이나 욕심은 애당초 발생조차 않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의지를 부정하려 하겠지만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명한 사실로 인식된다. 그래서 이제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선택의 의지를 주었노라고 변론한다면 그야말로 자기 주장에 얽매인 교묘한 희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