隻手의 음성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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隻手의 음성소식
  • 관리자
  • 승인 2008.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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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師의 雲水時節

①일본 유학

앞서 나는 포교사가 되었다가 다시 기도 차 오대산에 갔던 일을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스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아서 나는 다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조용히 생각하니 아무래도 새로운 학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경도 열라하고 약간의 참선흉내도 보았지만 새로운 학문은 포교상 필요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들 불교전문 학교에 가고 있었다. 범어사의 김 어수, 고운사의 우 덕수, 서 재균, 통도사의 이 서, 김 수성, 강유문씨 등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일본으로 유학하기로 마음먹었다. 경도에 있는 임제대학에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이미 유 종묵씨가 와 있었고 그 때 함께 공부하던 한국 스님들은 선암사의 임 취봉, 최 재순, 한 상정, 그리고 나였다. 그 때 시절에 우스운 이야기 하나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그때는 내 나이 설흔 두 살. 한참 바람피우고 장경 열람도 하고 고운사 포교사도 지낸 다음이었다. 묘심사는 기숙사였는데 나 혼자 그곳에서 지냈다. 마루방에 꿇어앉아 지내느라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러나 이것을 못 견딜까 보냐 하는 오기로 끝끝내 잘 견뎌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때의 학장은 그 고또오 스이강(後藤瑞岩) 박사였다. 독일유학을 한 철학박사다. 위풍이 당당하고 인물도 잘났다. 노사로서는 정평이 있는 분이며 안목이 있는 것으로 내외에 통하였다. 그런데 매 일요일이면 강당에 모여서 특별강의를 하였다. 약 五백명은 모였다고 생각되는데 그 자리에서 자주 한국 사람을 희롱하는 말을 했었다. 한국 사람은 글을 읽을 때 학생은 끄덕끄덕 좌우로 흔들고 선생은 앞뒤로 흔들흔들 흔든다고 하면 학생들은 일제히 깔깔대고 웃었다. 증도가(證道歌)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강의나 할 것이지 어째서 우리 한국 사람을 건드리는가. 나는 적개심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그런 한국사람 조롱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선지식이라 하는 보조(普照)스님은 견성을 못했다는가, 서산(西山)스님도 별 것이 아니라든가 하고 비방을 하는데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상대가 학장이요, 노사다. 가까이 말을 붙여볼 사이가 못된다. 마음 속으로는 울울하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통쾌했던 一할

그런데 三월달에 개학해서 五월이 되니 마침 때가 왔다. 그때는 「셋싱(接心)」이라 하여 용맹정진하는 때였다. 그리고 독참(獨參)이라 하여 방장화상(方丈和尙)께 직접 대면하여 문답하게 됐다. 대중을 대표하는 입승이 종을 치면 한 사람씩 차례로 방장실(方丈室)로 들어간다. 창문 앞에서 한 번 절하고 안에 들어가서 반배(半拜)한다. 그리고 방장스님 앞에 엎드려서 말씀을 기다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단독 면담이다. 말이 끝나면 줄을 당기고 종소리가 쨍 나면 그만 학자는 물러가고 다음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몇 번인가 쨍쨍 종소리가 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도 격식대로 一배하고, 또 들어가서 반배하고 노사의 말씀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고또오(後藤)노사의 말이 떨어졌다. 이 노사의 안목이 어느 정도인가 직접 대질할 절호의 기회다

『자네는 어떤 화두로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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