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삐의 죽음
상태바
해삐의 죽음
  • 관리자
  • 승인 2008.02.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리수 그늘

「초로(初老)를 느끼기 비롯하는 나이」, 내가 만일 시(詩)작품을 위해 붓을 들게 되었다면 이와 같은 말이 부련 듯이 솟구쳐 올라왔을 것이다. 나이 60에 가까워지니 차 한 잔을 달이는 시간 사이사이에 토막 말 되어 뛰쳐나오는 일조의 주술(呪術)의 언어와 같은 것을 자아의식 속에서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유년 시기 맹꽁이 놀음으로 소리 높여 가면서 외우던 글, 학이시습(學而時習)도 그러려니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 오니 이 또한 아니 기쁘랴…」도. 우선 선현(先賢)들의 말씀이 교훈을 떠나 자기 자신의 생활 내용으로서 자각되기 비롯한 느낌이다.

한 해에 한 두 차례 나의삼청초사를 예고 없이 찾아와서 꾸밈없는 말, 소년과 다름이 없는 해학과 농담을 섞어가면서 웃음의 잔치를 누리다가 훌쩍 떠나는 친구가 있다. 중학교 동창이자 그 이후 학생 시절의 쓰고 단 맛을 함께 나눈 T형이 바로 그 한 사람이다. 20대에 8·15를, 그리고 6·25를 거쳐서 우리들 나이가 30 초반기에 이르렀을 무렵까지, 중학 동창끼리 화창한 웃음의 자리를 꾸미게 되면 그 가운데 갑, 을, 병 누구이든 한 사람의 입에서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를 소리치듯 읊조리는 친구가 있었다. 그렇듯 치기만만(稚氣滿滿)했던 사이였으나 작금 10년 사이 약속한 바 없으면서도 이 같은 희담(戲談) 비슷한 분위기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