職場은 보시바라밀의 道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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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승인 2008.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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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업사회와 불교

1. 대승보살의 길

대승보살의 삶은 곧 자리(自利) 이타(利他)의 행이다. 나에게 이익되는 일이 곧 남에게도 이익되고 남에게도 이익되는 일이 곧 나에게도 이익되는 말하자면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버린 삶이 곧 대승보살의 삶이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남에게 이익주는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중생들과 함께 복락을 누리며 마침내 모두 함께 성불하기를 원하는 구도자를 보살이라 한다면, 보살이란 결국 남에게 이익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진리에 대하여 믿음을 일으키고 진리의 실현을 원하는 사람이 될때 우리는 보살이 된다. 그 보살의 삶은 이타가 근본이 된다는 말이다.

자리와 이타는 일반적 상식으로는 절대모순의 개념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공통적 믿음에 의하면 어느 개인의 생존이란 것은 남의 희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존이 남의 희생에 의하여 가능하다고 보고 또한 남의 생존이 곧 나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는 인생관 세계관으로서는 자리와 이타는 절대모순의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리라는 말의 뜻을 헤아려보지 아니할 수 없다. 나에게 이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함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부자유스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것이다. 이로움이라는 것은 자유의 분량을 키우려는 노력은 다방면으로 벌어진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육신의 부자유를 극복하여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으려는 노력일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육체야말로 자기의 전부라고 믿고있고 그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까닭에 자기의 전체인 육체를 자유로이 유지 발전시켜 나아가려면 물질이 풍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익이라는 말은 바로 이 물질을 취득하는 양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이익을 준다고 할 때 먼저 생각하여야 하는 것은 물질적 혜택을 주는 일이다.

누구나가 바라는 바가 바로 의. 식. 주의 조건의 구비인 까닭에 이러한 물적인 조건을 가능한대로 양호하게 해주는 일이 첫째로 남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배고플때 남으로 부터 밥 한 술 얻어 먹게되면 그 은혜는 백골이 되어도 잊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남에게 이익을 주려면 나의 물적인 손실이 뒤따르게 되기 때문에 남에게 이익주는 일을 힘써 해가지 못한다. 그리고 남에게 이익주는 일을 나의 희생이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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