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 염불로 죽음을 면한 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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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염불로 죽음을 면한 두사람
  • 관리자
  • 승인 2008.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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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빛바랜 땅의 등불

오늘날까지 교도소에 있어서의 총합법회나 개인 상담을 수천 번 가졌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시간들은 모두가 자신의 탁마를 위한 공부시간이 되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뀔만한 시간동안에 교도소 고화를 통하여 내가 직접· 간접으로 체험한 일들을 기억에 남은 것만 적는다 해도 아마 지필로는 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통해서 내가 가장 큰 공부를 한 것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은 헤아릴 수 없이 불가사의하여, 일심으로 의지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 일이다.

나는 두 사람의 사형수가 부처님께 의지하여 죽음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처음부터 같이 체험했다.

사건의 순서에 따라 두 사람의 기적을 핵심적인 부분만 적어보기로 한다.

내가 양○○씨를 만난 것은 ‘76년 7월 달의 어느 수요일 날 대구교도소(화원)에서 이었다.

양씨는 그 때 대구고법에서 일심(진주지원)에서와 같이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직후였다.

교무과에서 기록을 훑어보고 상담실에 갔더니 목에 염주를 건 양씨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일어서며 수갑 찬 손으로 합장했다.

“어무이께서 좋아하시는 종교라 서요. 그래 스님을 찾았심더. 스님 지가 마지막 효도할 길을 찾아 주이소.”

‘50년생으로 그 때 나이가 27세였던 그는 건강한 체구이면서도 양과 같이 순해 보였다. 사형수로서의 용모로는 어느 구석도 어울리는 곳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해서 나를 찾아 면담을 신청했는지는 오늘까지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때 내가 늘 만나 이야기하고 있던 또 다른 사형수 방○○로부터 소개를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감방에서 참새를 기르던 방○○은 그해 12월 26일 대구교도소에서 형장의 이슬이 되었지만 참으로 온순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불교이므로 자신도 이제 교도소 안에서 불교신자가 되었다는 양씨에게 나는 우선 「부모은중경」을 설해주었다. 그리고 목련존자의 지극한 효성도 함께 이야기 해주었다.

양씨는 이런 말을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죽는다고 해서 지은 죄가 소멸되는 것인지가 의심스럽습니다. 효도를 모르고 죽은 것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지장보살이 ‘각화정자재왕여래’부처님께 서원하신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서원문을 들려주었다.

“제가 이제 미래세가 다하도록 이 죄고받은 육도중생을 해탈케 한 후에 저 자신도 성불하겠습니다.”

양씨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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