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海思想에 대한 斷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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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海思想에 대한 斷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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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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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정신과 불교

1919년11월 4일 상해 임시정부의[독립신문]부록은 만해 한용운 스님의

[조선독립이유서]-혹은[조선독립의 서(書)]-를 특별게재하고 있다. 이것은 1919년 7월10일 일제검사의 심문에 대한 그의 답변서였는데 그때 제출된 진술의 표제는[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서]였다. 만해는 이것을 인찰지에 베껴서 면회하러 온 그의 상좌 이춘성스님한테 넘겼던 것이 상해 임정요인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상해 임정은 일단 동학혁명에 이어 국내의 다양한 의병운동이 일제의 통감부에 의해서 패산하여 국외로 밀려났을 때 그런 망명의 물결에 의해서 무장독립운동의 행동을 경비하고 새로운 체제를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 그 정치적 동인회(同人會)는 설치되기 시작한다.

국내의 삼일운동은 그보다 조금 앞선 동경 유학생들의 2.8선언 이후에 일어나서 국외에 까지 그 운동이 파급될만한 민족의 크나큰 주체운동이 되었다.

상해 임정이 이런 운동에 자극을 받고 독립 상조론 따위가 불식되 본격화 된 것은 당연했다. 거기서 만해의 [조선독립이유서]를 그들의 표현기관에 민족의 이름으로 특기한 것도 당연했다.

만해는 삼일운동의 우연한 3십3인 선언 대표 가운데서 이미 다 알려진 바와 같이 가장 두려움 없고 뜨거운 행동을 보였다. 천도교 쪽에서는 우선 조선 자치권이라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의도로 청원서를 내자하고 기독교 쪽에서도 우리자신이 아직 독립의 조건이 갖춰지지 못했으므로 청원형식으로 하자는 의견들을 강하게 막아버린 것은 만해였다. 그는 독립선언서 일부 내용을 고치고 공약삼장을 덧붙이는 등 그것을 크게 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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