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스러운 심법의 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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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스러운 심법의 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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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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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고전(종문무고(宗門武庫))15

담당 준(湛堂 準)화상은 공명(孔明)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 문장을 지을 줄 알게 되었다 한다.

그의 ‘나한에게 공양하는 글❲나한공소(羅漢供疏)❳’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범인인 아라한은 우리말로는 ‘무생(無生)’이라 한다. 삼계 25유(有)의 번뇌를 벗어나고 분단생사(分斷生死)(1)를 초월하여, “천상과 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하니, 모든 중생을 복되고 이롭게 하라.”는 부처님의 유촉을 받은 이들이다. 그러니 신자들은 반드시 공양해야 한다. 또, ‘수마기(水磨記)’(2)를 지었는데, 이런 것이다.

늑담산(泐潭山)은 마조대적(馬祖大寂)선사께서 예전에 선자(禪者)들에게 부처를 뽑던 대 도량이다.

비록 햇수는 매우 오래 되었으나 불법은 오래된 적이 없다. 다만 그동안 선지식들의 소견이 같지 않아서 서로 높고 낮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것이 있다면 있다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중이 마조에게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으니, “마음이 부처다.”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신 뜻을 살펴보면, 중생이 원래 성불하여 높고 낮은 것이 없으니, 그 높고 낮은 것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법에는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더욱이 말세에 자신이 얽매여 법을 설하는 자이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를 뽑고 스승을 찾는 일을 부득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송(大宋) 원부(元符) 무인년(1098)에 한중(漢中)의 사문인 의충(意忠)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스승을 찾아 도를 묻고 부처에 뽑히려 선을 참구하여, 간목(干木)(3)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장소를 만나면 놀이를 했다.

그런데 그 장소는 한때에 놀이를 벌인 것이었지만, 그 공덕은 만고에 이익 되게 하려 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의 제도를 고쳤으나 영인(郢人)은 오히려 그 뜻을 몰랐다.

그릇에 따르고 근기에 맞게 하여 그렇게 변통(變通)하는 것은 나에게 있으니, 어찌 먹줄로서 그 큰 법칙에 구애될 것이 건대 고인의 규칙에 얽매이겠는가?

이것은 ‘자식에게는 가르칠 만한 것이 없다. 가르치는 것은 언어의 찌꺼기일 뿐이요, 마음의 지극히 미묘한 것은 아니다. 그 지극히 미묘한 마음은 나에게 있고 문자나 언어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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