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잖아 죽어갈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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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잖아 죽어갈 것은…
  • 관리자
  • 승인 2008.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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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사는 자연

내 고향은 전라북도 고창이다. 일제시대 김성수 선생께서 열여섯이 되도록 자기 집 땅 아닌 곳은 밟아본 적이 없다고 하는 바로 그 동네 그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맘때쯤 겨울이면 먼 바다 위에도 눈이 쌓여 하양 수평선이 눈발 되어 넘실대고, 육지 깊숙이 들어와 파도치고 있는 포구 넘어 험한 산골에는 부안의 내소사가 아슴푸레하게 보이기도 한다. 또 동네어귀 기나긴 오솔길을 따라 눈길을 이어보면 우리고장의 명소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인 선운사 가는 길이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고장 내 고향 고창 중에서도 우리 마을 ‘만돌리’란 곳은 일제시대 때 간척사업으로 생긴 동네이다. 총 가구 수가 30여 호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마을이지만 여태껏 동네 사람들은 몇 대를 이어 성실한 땀으로 이 척박한 땅을 갈아엎어 옥토를 일구고, 짬짬이 바다에 나가 일하는 식의 부지런을 떨며 반농반어의 생활을 유지해 왔다.

워낙 오염이 되지 않은 바다여서인지 십여 년 전부터는 우리 마을의 앞바다에서도 그 까다롭다는 김양식이 시도되어 마을사람들의 숙명적인 가난 종지부 찍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김양식이 문제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잘 되어서 도시로 올라갔던 사람들마저 다시 불러들일 정도였던 이 김양식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게 수확이 줄고, 때론 사그리 타 죽어버리곤 했다. 아무런 원인도 발견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마을 사람들은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현격히 줄어들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김 수확에 미련을 떨치지 못해 다시 시도하곤 했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모여들었던 마을사람들도 다시 더나버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김의 떼죽음은 아직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채로 남아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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