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미술] 2.분황사 모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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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미술] 2.분황사 모전탑
  • 황수영
  • 승인 2008.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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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미술

 (1) 목탑(木塔)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불탑의 건립은 시대와 믿음에 따라서 변천했다. 불교가 전해진 여러 나라에 있어서 그 나라가 가지는 역사와 전통 문화와의 융합에서 불교예술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삼국이 각기 불교를 받아들여 탑을 세우고 불사리를 봉안함에 있어서도 그 방식과 계통이 서로 다르고 또 건축 수법이 다른것 도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불교를 수입한 고구려는 평양으로 그 서울을 옮기기에 앞서 광개토왕 三년(三九三)그 곳에 九寺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들 九寺는 아직 그 이름과 소재를 밝힐 수가 없고 다만 금강사지(金剛寺址)만은 평양 청암리 에서 추정된 바 있다. 이

는 一九三八년에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절터 중심에 八각을 이루는 거대한 건물자리가 노출되어 그것이 고구려 시대의 큰 목탑자리로 추정되었다. 이들은 당탑(堂塔) 의 여러건물로 나누어져 남북 또는 동서에 배치되어 있고 북쪽과 동서의 건물은 모두 금당으로 생각함으로써 특이한 불당과 탑의 배치 방안을 생각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당탑가람(堂塔伽藍)의 중심이 탑에 있었고, 또 사리에 대한 믿음의 비중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백제는 그 처음 서울이었던 한산(漢山)도읍시에는 창사(創社)의 기록이 보이나 그 절터는 찾을 수 없고 공주 천도후에 겨우 대통사(大通寺)라든가, 흥륜사(興輪寺등의 사명(寺名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본격적인 당탑가람은 이룩되지 못하였고, 그 후 부여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찬란한 백제불교미술의 꽃을 피웠다고 하겠다.

따라서 중국 측의 기록에는 백제를 가리켜 「사탑심다」(寺塔甚多)라고하여 백제 사원건축의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특히 목탑이 있었던 곳으로는 군수리(軍守理),사지, 구아리(舊衙里),추정 사천왕사지, 부소산(扶蘇山) 서북방의 사지등을 들 수 있으며 또 새로운 예로서는 전라북도 익산의 제석사지(帝釋寺地)를 들 수 있다.이외에 익산에는 전형적인 목탑양식을 착실히 계승하고 있는 미륵사지 석탑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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