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효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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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효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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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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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불교와 효

 1. 머리말

 종래의 효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 관념은 유교적 윤리로 한정하여 이해하려고 하였다. 특히 출가를 수행의 형식적 요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불교에서는 부자관계의 효는 전제되지 않는다는 편견이 대두되었다. 그것은 출가란 이미 가정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윤리가 성립될수 없다는 것이다. 더우기 맹자가 말하기를, 「불효가 셋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자손을 못 낳아 조상의 대를 끊기게 하는 것이 제일 크다 」고 하였는데, 이러한 관념은 출가는 곧 불효라는 윤리적 단죄(斷罪)로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맹목적으로 통념화되었다는데서 불교는 효관념이 없다는 독단이 나오게까지 되었다.

 종래의 유가적(儒家的) 도덕률(道德律)은 효는 모성애와 같은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을 생육(生育)받은 자녀측에서 부모에게 되돌리는 말하자면 「보본반시 (報本返始)」의 정감(情感)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따라서 효경(孝經)에서 말하는 「속성의 근본이며 모든 교화(敎化)가 우러 나오는 원천인 것이다.」결국 효는 「보본반시 」와 「도덕교화 (道德敎化)」의 뜻을 갖는다. 

 이러한 유가적 도덕규범에 대하여 출가를 수행의 형식적 요체로 요구하는 불교는 「보본반시 」의 기회가 있을 수 없으니 불교는 불효를 조장한다고 억압한다.

 더구나 고려말 조선초의 몇몇 유자들이 「불교는 국왕과 부모를 버리고 산림으로 숨어 들어가 적멸을 약으로 삼기 때문에 무부(無夫), 무군(無君)의 오랑캐 교 」라고 하여 불교는 마치 무부· 무군의 교인 양 낙인찍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정하에서 조선초의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에 의하여 불교는 그자신 변명할 여지도 없이 억압당하여 왔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조선조의 이러한 불교정책에 의하여 선입관화(先入觀化)된 관념을 그대로 간직하여 불교는 마치 「불효 」의 종교라고 지칭하며 인륜에 민감한 일반 대중을 현혹시키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오도된 선입관을 불식(拂拭)하기 위하여 불교의 효사상을 다루려 한다.

 2. 효의 근원적 의미

 유가적 의미에 있어서 효는 부자관계이다. (물론 부에는 모도 함께 있다.) 따라서 부는 자(慈)해야 하며 자는 효(孝)해야 한다. 이때 부의 자나 자의 효는 조작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성 본연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차마 어쩔 수 없는 마음)」에 의하여 나타나는 정감이다. 그것이 곧 인(仁)으로 성(性)이요 정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이다. 이러한 「측은지심 」은 부와 자의 혈육적 친근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남은 인지상정이다. 왜냐 하면 「측은지심 」은 외물의 촉감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유가에서는 이러한 「 측은지심」을 도심이라 하여 도심을 확충시기라고 하였다. 

  결국 「인 」의 친소원근(親疏遠近)의 도덕율은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확충하는데 그 근본 뜻이 있게 마련이다. 효라해서 한 가정의 효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효를 전제로 교화 속화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가적 효는 마치 한 가정의 효만을 중시하는 듯 이해하고 그것에 맞추어 불교의 출가를 비난하여 효가 없다고 한 것은 유가의 바른 이해도 없을 뿐만 아니라 틀린 답을 가지고 옳은 답을 채점하는 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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