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에 우리는 신라의 돌에 판 경문을 더 조사하다가 마침내, 경주에서 법화경을 돌에 새긴 사실을 알고 그러한 돌을 많이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 때가 1960년이다.
옛날 약 이백년 전에 경주 탑리 사람들이 동네의 작은 저수지 제방을 만들기 위해서 돌이 필요하니까 그 근처 절터에 있는 (아마 창림사일듯) 돌을 옮겨다 제방을 쌓았다. 그런데 그후 더 큰 저수지가 생기고 나서 그 제방이 필요 없으니까 그 제방을 밀어 없애고 있었다.
거기에서 수십 개의 법화경석이 나왔다. 그래서 그 당시 조명기 박사와 같이 내려가서 그저 닥치는 대로 전부 사 모았다. 그것이 지금 동국대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 그 사이 신라 시대엔 종이에 쓴 것이 나오지 않았기에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 당시의 사경 연구를 계속해왔다.
또 하나 금강경이 있다. 금강경은 경주 남산에 있는 칠불암에서 나왔는데, 오늘날에 있어서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이렇게 셋이 신라시대의 석경 역사에 들고 있다.
그 외에 조그마한 흙기와장에 경문을 새긴 것이 나왔는데 그것은 법화경이다. 해방 후에 처음 나왔다. 그러다가 작년 말에 진짜 화엄경 사경이 국내에서 나왔다. 참 놀라운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고맙고 즐거운 일이었다.
어쩌면 불국사를 만들고 석굴암을 한참 만들기 시작할 그 때 스님들이 옮겨 쓰신 그 경이 천 몇백 년이 지나서 우리 눈 앞에 나타난 사실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사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다행이고 복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사이 꿈에도 생각지 않던 신라 사경이 나타남으로써 우리의 연구에는 새로운 시야가 전개되어 사경시대는 신라시대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러한 경사가 있기 전에 우리의 연구는 고려 시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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