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득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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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득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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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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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업사회와 불교 (14)

 육화경의 마지막 덕목은 이화동균이다. 나는 이말을 '경제적 이득은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는 말로 해석한다. 경제적 이득은 생산 활동의 성과이다. 그런데 생산활동은 어느 특정인만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은 우리가 이미 보아왔다. 어떻게 보면 우주적 동원에 의해서 생산이 행하여진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하에서는 자본주가 그의 위험 부담하에 어떤 금액의 자본을 투자하여 생산의 주체인 기업을 형성하므로 그 기업의 생산성과(영업 성과)의 당연한 귀속은 자본주인 것처럼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하여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성립되는 시장가격에 의하여 제반 생산요소를 사들이고 또 제품을 팔아서 그 차액을 자본주가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는 생산에 여러가지를 자기 판단하에 사 들인다. 이 생산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원자재가 있고 비물질적인 인간의 노동이 있다. 이러한 생산요소의 구매가격은 생산품의 원가를 구성하므로 이 원가를 저하시키는 일이야말로 기업주가 제일 크게 머리를 써야 할 문제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현대 경영관리에서 가장 크게 다루고 있는 과제 중의 하나가 원가관리이다.

 생산을 경제적으로 하기 위하여 원가를 절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높이 평가하여야 할 것이지만 그 절감을 물량적으로만 다루게 될때 강자가 약자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원자재의 구매에 따르는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노동력에 대한 경제적 보상, 즉 노임의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볼까 한다.

 노동이 생산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임을 잊는 사람은 없지만 그 노동은 인격에 직결되어져 있음을 상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노동을 생산 활동에 동원된 기계적 동작인 것으로 생각하고 노동력의 제공자인 노무자를 인격과 무관하게 다루려는 경향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한다.

 특히 노동력의 공급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개발도상국가의 경우, 그 공급이 수요보다 크므로 노임이 사용주의 편에 유리하게 결정되어지는 것을 자연스러이 받아들이고 있다. 노동의 제공이 노무자의 의무이면서 노임의 지불은 사용주의 은혜적 급부인 양 인식하는 경향을 전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노임 수준이 크게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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