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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일제 시대에는 거지가 많았다. 철사를 꽤어 손잡이를 한 깡통을 들고, 너덜너덜 해지고 갈갈이 찢어진 누더기를 입고 헌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끼니때마다 집집마다 다니며, 문기둥에 기대서서 「밥좀줍쇼—,네—. 밥좀줍쇼—,네—」
하고 구걸하는 때투성이 남자 거지. 해진 옷을 누덕누덕 기워 입었지만, 그 옷이 깨끗하고 꿰진 고무신을 신은, 세수하고 다니는 여자 거지는 양푼에 보자기를 덮어 들고는 아는 집 찾아오듯 안마당으로, 성큼 들어서서, 부엌문 앞에 와 선다.
밥상을 차리다가, 아니면 설겆이를 하다가, 구걸을 오면, 그냥 돌려보내는 일을 거의 못 보았다.
남자 거지에게는 먹다 남은 밥이랑 반찬을 폭폭 쏟아주고, 여자 거지에게는 맛 변한 김치 한통 맛 없는 된장 따위를 떠다 주기도 하고, 쌀 한 공기를 퍼 주기도 한다.
「아침 먹고 치웠어요, 다른데나 가 보우.」
하고, 부엌에서 내다보고 그냥 보내려고 하면, 할머니가 쌍창을 열고는, 「가엽다, 뭐라도 조금 줘 보내라.」고 한다.
할머니는 추위를 안 타셔서, 겨울에도 대청 마루끝에서 상을 받을 때가 많았다.
「밥좀 줍쇼—,밥좀 줍쇼.—」 거지가 중문깐에 들어서서 구걸을 하면,
「이리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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