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미술] 3.신라의 석탑(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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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미술] 3.신라의 석탑(石塔)
  • 황수영
  • 승인 2007.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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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미술(3)

전회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의 석탑은 삼국시대 말기 서기 7세기에 들면서 처음으로 건립하였으며 그 국토로서는 백제와 신라를 들어서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두 나라가 이룩한 석탑으로서 오늘에 전래하는 전북 익산(益山) 미륵사지 다층석탑과 경주 분황사의 석탑 등 2기를 들었었다. 그리하여 이들 나라와 양식을 달리한 두 계통의 석탑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빛나는 계기를 맞아서 하나로 종합됨으로써 마침내 한국석탑의 전형(典型)을 낳았다. 그리하여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통일 직후에 건립된 감은사(感恩寺)3층 석탑 2기 또는 고선사(高仙寺) 3층 석탑 (현재 경주박물관에 이건 되어 있다) 을 들었었다. 그런데 이들 감은·고선 양 탑은 크기도 서로 비슷하거니와 그 양식도 또한 동일한데 이들의 주요한 특색을 들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넓은 2층의 건축기단을 지니게 되었는데 상하 각 층은 모두 면석(面石)과 갑석(甲石)으로 구성되었고 면석에는 탱주(撐桂)가 있어 4 우주와 더불어 각 면을 구분하고 있다.

(2) 탑신은 1간 4면으로 축소되었으며 (익산 미륵사탑은 3간 4면)각면 1석씩 합계 4석으로 짜여 졌는데 다시 우주(隅柱)를 새겼다.

(3) 옥개석은 경주 분황사 탑과 달리 낙수면(落水面)이 목조 건축에서와 같이 평탄하여졌고 옥개 밑에는 층급(層級)형의 5단의 받침을 남기고 각층의 옥개는 상하가 다른 돌로서 모두 8석으로 이루어졌다.

(4) 모두 상륜(相輪)이 구비되었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오직 철제찰주(鐵製檫桂)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탑신과 기단을 모두 방형(方形)을 기본으로 삼아 구성된 신라의 전형석탑은 아래로부터 기단, 탑신, 상륜의 3부로서 구성되었는데 이 같은 방식은 그 후 고려, 조선 양조를 지나면서 오래도록 지켜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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