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감로탱에 나타난 죽음 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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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감로탱에 나타난 죽음 ➋
  • 구미래
  • 승인 2023.07.26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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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緣起의 진리, 공생의 가치 담긴 감로탱
인신조수(人身鳥首) 형상의 뇌신(雷神)이 둥근 먹구름 속에서 북을 두드리고 있다. 양손에 바라를 든 인물, 긴 칼을 아래로 내리꽂는 자세의 인물이 함께 표현됐다.

갑자기 다가온 죽음

어느 시대나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들이 있게 마련이다. 연로하고 병들어 수(壽)를 다한 노년의 죽음도 슬프건만, 갑자기 맞닥뜨린 죽음은 떠난 자에게도 남은 자에게도 더없이 비통하다. 감로탱 하단에는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갖가지 죽음이 일어난 상황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풍속화와 같은 백성들의 삶 속에 담담히 자리한 그 장면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 마치 죽음의 일상성을 말해주는 듯 여겨진다.

감로탱에 나타난 수많은 죽음의 형태를 원인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눠 살펴보자. 

첫째, 천재지변과 사고로 인한 죽음이다. 벼락을 맞은 이, 홍수·계곡물에 휩쓸리거나 강물·우물에 빠진 이, 집·들에 불이 나서 죽은 이, 무너진 바위·담·집·돌무더기에 깔린 이, 높은 데서 떨어진 이, 난산(難産)으로 죽은 이, 전염병에 걸린 이, 마차나 말에 깔리고 밟힌 이, 혼비백산해 죽은 이, 전쟁으로 죽은 이 등이 그려져 있다.

둘째, 다른 존재 또는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죽음들이다. 도적을 만나 죽은 이, 독살당한 이, 주인에게 맞아 죽은 노비, 다른 이 또는 부부·가족 간의 다툼으로 죽은 이, 바둑·투호 등을 하던 중 시비가 붙어 죽은 이, 치정 갈등으로 죽은 이, 옥사로 죽은 이, 돌팔이 의원의 오진으로 죽은 이, 흥정을 붙이다가 죽은 거간꾼, 폭음으로 죽은 술꾼, 창검으로 자결해 의로움을 밝힌 이, 호랑이나 독충·독사에게 물려 죽은 이 등의 모습이다. 

셋째, 궁핍하고 외로운 죽음, 또는 그러한 처지로 인해 발생한 죽음이다.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은 이, 돌보는 이 없이 병에 걸리거나 늙어 죽은 이, 비관하여 목을 맨 이, 의지할 곳 없어 죽은 아이, 빚으로 명을 재촉한 이, 흉년 기근에 떠돌다 죽은 이, 아이와 함께 죽은 어미, 고독하게 죽은 날품팔이, 맹인, 후손 없이 죽은 이 등이 하단 곳곳에 그려져 있다. 이들은 갑작스레 이승을 떠나 망망대해를 헤매듯 방황하고 있을 법하다. 

“어떤 이는 유행병을 만나거나, 나무·돌에 부딪혀 상하거나, 춥고 배고픔이나 낭떠러지·골짜기에 떨어져 생명을 잃었으매 그 영혼이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고향 산천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니 어찌 애통해하는 부모 처자가 없으리오. 

…이에 수륙재의 법회를 개최해 가는 길을 열고자 합니다. …엎드려 원하오니, 부처님의 방편에 힘입어 길이 원한을 씻어 버리고, 감로(甘露)로 목을 적시고 법수(法羞)의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자비한 광명을 눈과 귀로 접하여 모두 부처 될 인연이 이루어지이다.”

여말선초의 학자 권근(權近)은 「수륙재소(水陸齋疏)」에서 위와 같이 적었다. 갖가지 이유로 제명을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감로의 법식을 내리고 불연을 맺어, 원한을 깨끗이 씻고 가는 길을 열어주고자 수륙법회를 열게 됐음을 밝히고 있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억울한 죽음일수록 한이 깊어 이승을 떠돌며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봤다. 이러한 생각은 동서고금 없이 보편적인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비명횡사한 귀신과 후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을 여귀(厲鬼)·무사귀(無祀鬼)라 부르며 나라에서 여제(厲祭)를 지내줬다. 따라서 고통에 처한 고혼을 위무하고 법식을 내려, 스스로 미혹함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수륙재의 공덕이 크나크기에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에도 면면히 전승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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