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산 연등회] 빛의 연대기
상태바
[인류의 유산 연등회] 빛의 연대기
  • 이효원
  • 승인 2021.05.27 2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순간도 천박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특별한
등간 부분만 확대해 보면 등간과 등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2008년 3월 10일. 

이날은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행사기획단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에서 출판한 『초파일 행사 100년 - 연등축제를 중심으로』라는 책이 정식으로 발행된 날이다. 필자가 해당 책자가 나오기까지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100년 전 종이 냄새들을 맡아가며 정리작업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최초로 본 사람’이라는 연구자로서 자부심만 있었지, 이 작업이 인류무형문화유산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오래된 자료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골방에서 매일 맡아도 그때 심정은 참으로 간절하고 소박했다. 다 정리하면 이전 100년, 이후 100년도 계속 정리가 될 것이고 그렇게 역사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불사르고 불태운 연구자들과 ‘맨땅에 헤딩하듯’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어 낸 ‘(당시 이름) 봉축위원회’가 바로 이 위대한 ‘빛의 연대기’의 연출 스텝들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이다. 

 

연등 공양하는 그 순간의 빛

빛의 연대기, 바로 그 주인공을 찾아가는 짧은 여정을 시작해보자. 

스스로 태워서 불을 밝히고 그 불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연등(燃燈)의 기원이 바로 지금 연등회의 첫 모습이다. 요즘은 연등회라고 하면 대규모 행렬, 커다란 장엄등, 수많은 인파 그리고 현란하고 아름다운 불빛들을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먼 옛날, 역사 속 연등회는 단 하나의 연등을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올리는 그 순간의 빛부터 연등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것이 바로 연등의 올바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역사를 거슬러 고대 동아시아까지 올라가 보자. 최초 연등회 자료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북위 시대 기록인 『위서』와 고승 법현의 인도 구법기 『법현전』에는 ‘연등’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2세기 후한이나 육조 시대에도 ‘연등’을 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 되면서 ‘연등 의례’도 함께 전해졌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신라 경문왕 시대(9세기)가 되면 연등 의례가 이미 왕실과 일반 백성들에까지 널리 퍼져있었다는 기록도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8세기 신라 원성왕 때 신라 도시의 젊은 남녀가 탑도 돌고 등도 올리며 복을 빌었다는 기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부처님께 빌었던 그들의 소원들도 지금과 똑같이 간절하고 아름답고 다양했으리라.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통일신라 시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황룡사 대탑에서 펼쳐졌음 직한 연등 의례를 상상해보라. 그 장대한 불빛은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불교가 왕실과 백성 모두의 신앙이었던 고려 시대에는 태조 왕건이 국가신앙으로 불교를 숭상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다양한 불교 의례들을 제도화할 수 있었다. 왕실에서 제도화한 연등회라는 행사를 통해 왕실과 귀족들은 연등회를 연례행사로 확장했고, 자연스럽게 백성들도 연등회 행사를 함께 행하게 되었다. 왕실의 적극적인 장려로 연등회는 점점 더 발전했다. 초파일 연등회의 시작을 무신정권 시기 최우가 개최한 연등회(1245년 4월 초파일)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 이전인 1166년 4월 초파일에 연등회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절요』에 있으니 12세기 정도부터는 초파일 연등회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바다와 같이 넓게 퍼진 천 개 등불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