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산 연등회] 당신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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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유산 연등회] 당신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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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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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모양 장엄등을 들쳐메고 뛰는 청년들, 차오르는 흥과 흘러넘치는 환희심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뛰는 풍물패는 연등행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연등회 ‘환희 메이커’ 한마음선원.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만 꼽자면 바로 자발성이다. 등 제작과 행렬, 연희 등 여러 프로그램에 직접 만든 등을 갖고 함께 춤을 추며 노는 개별 공동체들의 적극적인 준비와 참여다. 서울에서 열리는 연등회 외에도 각 지역에서 각자만의 특색과 전통으로 매년 연등회를 준비하고 개최한 곳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어떻게 연등회를 만들어가고 이 문화를 즐겨왔을까. 세계적인 문화와 축제의 중심에서 주인공으로 당당히 선 이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4월, 등을 준비하는 밤_한마음선원

글. 김주현 한마음선원

 

소파 방정환의 작품 중 「4월 그믐날 밤」이라는 단편 동화가 있다. 이야기는 하늘에 별만 빛나고 아무 소리 없이 고요한 밤을 배경으로 한다. 가늘게 속살거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하나둘씩 풀, 꽃, 곤충과 새들이 바지런히 봄맞이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이구, 이제 곧 새벽이 될 터인데. 꿀떡을 여태 못 만들었으니 어쩌나?”

“휴, 꿀떡은 우리가 모두 만들어 놓았으니 염려 말아요.”

“그런데, 내일 새들이 오면 음악 할 자리를 어디다 정하우?”

“아이고, 여보. 왜 여태껏 새 옷도 안 입고 있소?”

앉은뱅이꽃, 진달래, 참새와 개구리가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러 법우가 한곳에 모여 초파일 행사를 준비하는 풍경이 떠오른다.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한 가정의 가장과 아들딸로 열심히 살아가던 법우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등 불사가 진행 중인 불교문화회관으로 들어선다. 그제야 ‘불문’은 생명을 얻는다. 동화 속 꽃나비와 새들처럼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복닥복닥 움직인다.

1층에서는 또각또각 요리 재료 손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울력하는 법우들을 위한 간식 공양을 준비 중이다. 물 끓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는 법우들이 있는 넓은 공간으로 퍼진다. 그곳에서는 기반을 만드는 시설팀, 등의 모양을 잡는 골조팀, 빛을 담는 전기팀, 곱게 배접한 종이 위에 색을 더하는 채색팀이 분주히 손을 놀린다. 작업에 집중하면서도 살가운 인사와 담소를 나눈다. 늦게 도착한 법우에게는 오느라 애썼다고, 늦은 만큼 남아서 더 하라며 농을 던지기도 한다. 웃음이 한차례 퍼져나간다. 등 작업이 바빠지고 열기가 더해지면 밤새는 일도 부지기수다.

지하에서도 작업이 한창이다. 등에 사용할 종이를 굽는 종이팀과 행렬등을 만드는 합창단이 삼삼오오 모여 울력을 하고 있다. 옆방에서는 풍물 악기 소리가 들려온다. 행렬에서 뭇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는 장엄등처럼,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몸을 쓰는 법우들은 하나의 등이 되어 마음으로 빛을 전한다. 2011년 한마음선원 청년회에 들어온 이후, 매년 초파일 행사에 풍물패로 함께 하고 있다. 밤샘 등 불사를 하는 법우들처럼, 필요에 따라 풍물패도 종종 합숙하곤 했다.

합숙 날 연습은 새벽 서너 시까지 이어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원을 그리고, 무릎을 굴리며 호흡을 넣었다. 걷고 뛰며 악기를 연주하고 상모까지 더해지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숨이 찼다. 허벅지가 뻐근하고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지면, 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곤 했다.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때로는 선법가가, 때로는 큰스님 법문 말씀이 들려왔다. 잠시 후,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

연습에서 얻는 배움은 악기 연주나 바른 몸가짐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러 악기의 특성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소리를 만들려면 우선 나를 봐야 하고, 남을 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르게 된다. 몸과 마음의 경계가 다가왔을 때 서로 잡아주고 당겨주는 과정에서 나를 단련시키고 남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형성한다. 악기와 같이 성향도 생각도 천차만별인 법우들은 이렇게 한마음으로 물들어간다.

연등회가 가까워지면 필요한 물품을 재정비한다. 꽹과리와 징을 닦고, 장구는 해체하고 손본 뒤 재조립한다. 의상은 깨끗하게 빨고 다려둔다. 다른 팀들도 행렬을 앞두고 더욱 마음을 내며 준비한다. 5개월 동안 쏟은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등이기에 더욱 신중을 더할 수밖에 없다. 행렬 전날, 스님과 법우들이 모두 모인다. 그간의 땀과 고민의 의미를 되새기며 연등회가 널리 불을 밝히고, 무사히 마치기를 발원한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주말이 되면 동국대에서 수많은 인파가 열을 맞춰 행렬을 시작한다. 동대문을 지나면서 큰길에서 기다리던 장엄등과 합류하면서 행렬은 더욱 풍성해진다. 조계사까지 이어지는 길이 쭉 펼쳐져 있다. 탁 트인 도로 양쪽에는 행렬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다. 미리 마련된 의자에 앉아 구경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빠 어깨에 올라타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도 있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이런 때에 풍물패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차오르는 흥과 흘러넘치는 환희심에 힘차게 악기를 연주하며 뛰기 시작한다. 도로 양쪽을 오가며 거리의 군중과 어우러져 논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국적이 다른 이들도 리듬을 타고 발을 구른다. 손뼉이 마주치는 소리와 환호성도 하나의 악기가 되어 함께 연주한다.

연분홍 치마, 꾀꼬리의 고운 목소리, 이슬 술과 꿀떡을 준비했던 봄의 정령처럼 모든 과정에 공부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더해 우리는 이렇게 연등회를 수놓는다. 한 명 한 명, 등 하나하나가 밝게 비치며 사람들 마음에 봄소식을 알릴 수 있도록. 주말이 지나 다시 시작되는 일상 속에서 마음 불씨의 온기가 오래도록 남아 우리네 삶을 따뜻하게 밝히길 바라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이전과 같은 연등회를 만나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 한마디씩 할 것이다. 

“이제 정말 봄이 되었구나!”

“환하고 밝은 등불이 피었구나!”

다시 모여 노래하고 꽃비 아래 너울너울 춤출 날이 오리라 믿는다.

 

전통등으로 밝힌 ‘백제의 미소’_내포

글. 김선임 내포가야산 성역화추진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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