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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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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해설(禪典解說)12

얼마 안되어 사법(嗣法)을 허했다. 그 후 후주(後周, 556~581) 무제(武帝)의 파불(破佛, 574) 소위 불교배척 탄압을 만나 혜가와 함께 서주(舒州)의 환공산(晥公山, 山谷寺)에 숨어 있다가 5년 후에 혜가와 헤어져 사공산(司空山)에 들어갔다. (이 부분은­전등록­에 하자가 있었으므로 원문을 무시했다.) 그래서 환공산 사공산을 왕래하면서 또는 도회지에도 나가고 시골로 돌아다니며, 한 곳에 정주(定住)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10여년을 경과해도 승찬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개황(開皇12년, 592) 어느날, 14세(13세가 정당하다고 한다.)의 도신(道信)이 찾아와 뵙기를 청한다. (본문에 沙彌道信이라고 있는 것은 정확성이 없다. 道信이 출가한 것은 승찬의 옆을 떠난 뒤이다. 沙彌는 출가하여 10戒를 받고 구족계를 받기까지의 기간에 있는 승(僧)을 말한다.)

그 때 승찬과 도신 사이에 다음과 같은 응수(應酬, 문답)가 있었다.

󰡔스님, 자비로서 저의 계박(繫縛)을 탈(脫, 벗다)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오.󰡕

󰡔대체 누가 그대를 꽁꽁 묶어 놓았는가.󰡕

󰡔아닙니다. 누구도 묶어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해탈을 구하는가.󰡕

도신은 승찬의 최후의 일언(一言)에서 대오하였다고 한다. 그 후 도신은 승찬 문하에 머물기를 9년(10년설, 12년설이 있다.)후에 길주(吉州)에서 수구(受具)했는데, 그는 승찬 문하에서 수행을 참으로 진지하게 했다고 한다.

승찬은 가끔 어려운 문제로 도신을 시험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연(機緣)이 성숙한 것을 알고 도신을 인가(印可)하고 의법(衣法)을 전했다.

승찬(僧璨) : 중국 선종의 제3조로 숭앙하는 사람이다. 본관․성씨 등은 전혀 불명하다. 혜가에 참(參, 入室)하여 법을 이은 후 환공산․사공산 등에 오랫동안 은거했다. 경지(鏡智)선사로 불리었다. 대업(大業 2년, 606)에 입적하였다. 승찬의 찬술(信心銘)은, 624자의 자그마한 시편이기는 하나 대승교리의 신수(神髓)를 경묘(輕妙)하고 유감없이 표명한 것으로 옛날부터 널리 애송(愛誦)하고 있다. (禪宗四部錄의 첫 번째에 쓰여 있다. 이는 일본에서 모아 출간한 책이다. 信心銘․十牛圖․証道歌․坐禪儀를 합쳐서 한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필자가 1972년에 초판을 발행했다.―)

도(度) : 득도(得度), 삭발하고 염의(染衣)하고 불문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

전법(傳法) : 사법(嗣法)이라고도 하고 득법(得法)이라고도 한다. 사자(師資)가 상통(相通, 法)하면, 스승이 법을 제자에게 전한다.

해탈(解脫) : 번뇌, 망상을 탈(脫)하고 깨침에 이른다는 말.

법문(法門) : 교법(敎法), 조실스님의 문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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