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자도 고난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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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자도 고난이 있는가
  • 관리자
  • 승인 200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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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문답

󰊱 꿈자리가 사나운데
(문) 가끔 나쁜 꿈을 꿀 때가 있고 그런 때는 여간 불안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른지요?
(답) 꿈에 집착하시지 않기를 권합니다. 꿈도 몇가지 종류가 있기는 하지만 통털어 모두가 꿈은 꿈입니다. 대개는 과거나 현재의 의식․무의식 중에 생각하였던 것이 나타날 때도 있고 혹은 그보다 다른 것도 있기는 합니다. 꿈에 나타나는 어두운 생각이나 꿈 자체에 관심갖는 것은 허망한 것을 집착하여 또 다른 허망한 것을 낳는 결과가 됩니다. 모름지기 염불․독경하여 항상 은혜롭고 밝고 행복한 자기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매사의 상책입니다. 이런 수행하는 사람에겐 악몽이 없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행운이 옵니다.

󰊲 염불자와 고난
(문) 우리 법등에 염불해도 고난이 있다고 하면서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퇴전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좋은 지도 말씀을 바랍니다.
(답) 우리들은 대개 불법을 믿는다 하면서도 법을 구하느니보다 재앙을 막고 소원을 이루려는 생각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염불해봐도 고난이 떠나지 않으면 효력없는 약을버리는 것처럼 염불수행을 중단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아직 믿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믿고 수행하면 저절로 진리본연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근본을 잊어버리고 있고 지말에만 매달리니 잘못된 것이지요.
현실생활에서 수행할 때에 현상에 나타난 고난을 마음에 두고 염불할 것이 아니라 고난이 없는 법을 마음에 두고 염불하여야 합니다. 내 마음의 평화와 건강을 믿고 일심으로 염불하여야 합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감사와 봉사하는 마음이 항상하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염불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조만간 자신과 환경에 변혁이 옵니다. 진리의 평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개 세상에는 악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도 행운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또 착한 사람도 불행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그 악한 행이 결과로 성숙될 때까지는 이미 지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일단 악이 성숙하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불행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착한 사람도 착한 행의 과실이 성숙될 때 까지는 이미 지은 불행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선행의 과실이 익어감에 따라 그때는 받기 싫어도 복을 받아야 합니다.
대개 우리 생활주변에 나타나는 고난스러운 일들은 과거에 지은 것이 나타나는 것이며 나타남으로써 과거에 지은 원인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 이 진리를 믿고 우리는 흔들지지 않는 믿음으로 진리를 실천해 가야하겠습니다. 마음에서 진리가 성숙되는데 불행의 그림자는 설사 나타나더라도 불행의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며 나날이 청정한 행복의 환경은 짜여지게 됩니다. 이 도리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여 다른 길로 뛰어든다면 그 결과 얻을 것이 무엇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 천당과 천상
(문) 스님은 기독교의 천당을 인정하고 기독교의 성경의 진실성을 인정하십니까? 또 기독교의 천당과 불교의 천상은 같은 것입니까?
(답) 기독교 천당에 대하여는 목사님이나 신부님께 물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성경의 말씀에 혹 불합리한 점이 있더라고 합리가 곧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부정하기 보다는 진실한 뜻을 알고자 하는 것이 공부인의 자세입니다. 기독교 성경이 예수님이나 기독교 성인의 말씀의 기록이라면 그런 성인의 지견에 도달하여야 그 말씀의 뜻이 해독되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기독교 성경의 신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선행을 하고 계행을 가지면 천상에 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신즉 성인을 믿고 사랑을 실천하면 어찌 선과가 없겠습니까. 천당과 천상의 이동(異同)에 대하여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불교가 보는 천상에도 많은 차별이 있습니다. 욕계천에서 무색계천에 이르는 사이에 이십팔천이 있다 합니다. 따라서 천상이라 해도 복덕과 수명의 차이가 현격합니다. 기독교의 천당이 어떤 것인지는 성경말씀에 근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만 두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함이 있는(有爲) 선행에는 유한의 과(果)가 따른다는 사실과, 선행을 했더라도 법을 깨달아야 영원과 자재의 법성본연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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