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冬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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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冬登山
  • 관리자
  • 승인 200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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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그늘
돌층계 돌아 올라간 오솔길 끝에 산사(山寺)가 있다. 그 길목에 버려진 항아리 하나, 깨어진 대로 넘치며 물이 고여 맑은 산자락 그 물에 세수를 한다. 아마 잔설이 녹아 담긴 물인 듯싶다.
정(精)한 새소리도 담기는 소중한 목숨들의 그릇. 부족한대로 넉넉한 영혼이 담겨, 낮달 그윽한 선(線) 너머 마음을 짚어보게 된다.
싸늘한 도화지 같은 겨울 산사(山寺) 시야에, 점 하나가 돋아 나온다. 회색이 빠지면서 커져오는 점. 누굴까 누굴까 다가오는 점은. 눈밭에 눈썹 깔고 지나가는 어린 중이다. 하얀 도화지에 남은 것 없게 곧 동승마저 사라져 버린다.
중생이 성도수업(聖道修業)의 결과로 해탈을 얻을 때까지, 그 영혼이 육신과 함께 업(業)에 의해서 다른 생(生)을 받아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다.
멀리 산사를 바라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다. 일행 가운데 누군가가 이 윤회를 말했다. 그토록 아득바득 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초동(初冬)의 산사가 뵈는 자리에서 우리는 쉬었다.
사람의 육신이 썩으면 그 일부분인 44그램 속에, 화학(化學)에서 말하는 분자(分子)가 무려 6.2x1023개나 들어 있는 것이 흩어져 버린다고 했다. 현대과학이 계산해낸 수(數)의 개념이다. 6.2x1023이라는 수식(數式)에서 10의 23승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아니했다. 실제로 셈을 해보면, 우주를 넘어 은하계까지 뻗치는 그런 엄청난 수라를 것이다. 우리 일행 속에 끼어있던 그 화학자의 설명은 이 엄청난 수의 분자들이 떠다니다가 그 자손에게 들어갈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아직 떨어지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단풍 한 잎 밑에서, 다리를 쉬며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어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자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담배 연길ㄹ 마시듯 떠다니는 선조의 그 미소한 분자도 마시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
만약 물에 떨어져 흐르다가 바다에 까지 이른다면, 물고기의 몸으로 들어가 우리 몸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고 또 공기 중에 섞여 날리다가 우리의 호흡으로 들어올 수도 있겠으며 농작물이나 과일 속에 흡수되어 우리 체내에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혹시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면 석회석이 되어 언젠가 지각운동으로 다시 지표에 올라와 그 과정을 되풀이 할 수도 있겠으니 이 경우 윤회기간이 상당히 긴 것이 되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화학자는 육감(肉感)이라는 것도 설명된다고 했다. 사람의 몸에서는 신열(身熱)이 나오는데, 눈은 발광체(發光體)이므로 적외선(赤外線)도 뿜어낸다. 뒤에서 누군가가 쏘아보면 이때 그 적외선이 머리 뒤통수에 집중적으로 닿아 머리 뒷부분의 분자(分子)를 교란시켜서, 무엇인가를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낯을 몹시 가리는 어린 아기의 경우, 외가에 와서는 그 친척 중 어느 한 사람에게 뜻밖에 전연 낯을 가리지 않고 덥석덥석 잘 안기는 수가 있다. 이것은 어머니의 냄새와 같은 냄새를 뿜는 사람에겐 낯을 안 가리는 것이란다. 사람이 내뿜는 냄새- 재취 역시 냄새의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분자를 발산하는 체질을 가진 사람에겐 낯을 안 가리는 것이 된다. 들을수록 재미가 있다.
주인집에 초상이 나면 기르던 꿀벌통의 벌들이 꽃가루를 뭉개버린다는 미신 같은 얘기가 있다고 누군가가 털어놓는다. 이 화학자는 역시 불가사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곤충의 세계에선 커뮤니케이션을 분자레벨에서 한다. 곤충은 냄새로 대화를 하거나 신호를 하는데 이때 내뿜는 냄새로 분자로 구성된다. 어디 먹이가 있다거나 적이 온다던지 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거나 하는 것을 각기 다른 모양의 분자 방출로 알린다. 분자의 구조에 그 끝이 조금씩 꺾여서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곤충의 언어는 분자레벨에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여간 이 화학자의 말대로라면 우주의 생성(生成)은 원소(元素)의 합성(合成)과 진화(進化)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믿건, 안 믿건 그것은 각자의 문제다.
산사의 안마당에 낙엽 구르는 고요를 멀리서 바라다보며, 인간이 계산 할 수 없는 억겁의 세월 한 끝을 깊이 숨쉬어 본다. 언젠가 나도 한줌의 티끌로 이곳에 다시 와서 풍경을 스치는 바람에 섞였다가 어린 중의 가슴 안에 또는 깨어진 항아리에 조용한 자리를 잡을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겨울 해 지기 전에 비탈길을 내려왔다. 전공분야가 다른 사람과의 산행도 재미있다. 내 육신에 영혼이 머무는 동안 몸과 마음을 따뜻이 해주는 우거로 돌아와야 했다. 산다는 것, 이것도 삶의 비탈을 잠시 타는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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