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교수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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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교수의 연구실
  • 관리자
  • 승인 2007.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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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한담

“천하에 아무리 전통이 없기로서니 ,그래 , 학교 건물에 숫자로만 번호를 붙여? 꼭 벌집 같아서 찾는데 꽤나 애를 먹었네.” 모처럼 학교 연구실(5동 401호실)을 방문한 어느 동창이 눈살ㄹ을 찌푸리며 불평 투성이다.

나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바로 그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킬 대학은 이제 겨우 반백년을 넘지 않았네. 대학뿐인가. 우리나라의 정체(政體)도 그 반백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나? 다 알면서 뭘 그러나? 바로 이 건물이 준공검사조차 필하지 않았다네. 이 벌집 같은 대학 건물을 짓느라고 누군가 세계의 대학은 모두 둘러보고 다녔다는군. 그런데 문제는 이 대학 캠퍼스의 건설 본부장이 어느 장군이었더라 이 말씀이야. 그러니까 평소에 보고 듣는 것이 무엇이었겠나? 거창(?)한 교문의 철제 아아취는 곡 캠퍼스가 아니라 무슨 캠프(군대막사)의 정문쯤으로 걸맞다고 생각이 들지 않던가?”

“뭐라고? 천하의 서울대학교에 준공검사 미필의 건물이 버젓이 서 있다고?” “가만, 자네 천하, 천하 자꾸 들먹이네만, 그렇게 밖에서 보기보단 내실(內實)이 따르지 못하네. 사실 이대학이야말로 천하가 공유하고 천하가 자랑할 만한 대학이어야 하지 않겠나? 천하까지 아니 가더라도 우리민족이 자랑할 대학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명색(名色)이 이대학교가 내세우는 목표는 민족의 대학일세. 민족의 특색 있는 대학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에 내놓아도 버젓한 대학을 만들어보자는 염원을 담은 것이야.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은 방학이라서 좀 조용하네만, 정말 이대학교 캠퍼스야말로 민족의 비원(悲願)과 전 세계의 이상(理想)이 하나도 세련되지 않은 채로 불꽃 튕기는 격전을 벌이는 마당이 되었네.”

“무슨 소린가? 철학자는 이상한 말을 많이 한다지만 잘 못 알아듣겠어. 어째, 민족과 세계가 싸운다고? 거 어디 상대가 되나? 진리야 하나 아닌가? 우선 차나 한잔 내놓고 열을 올리세.” “ 이거 친구 대접이 너무 소홀했네. 가만 물을 좀 떠오고.” “ 어디 그냥 수도꼭지에서 좀.” “ 아따, 이방에 수도꼭지가 있으면 건물마다 번호를 붙이고 이 성냥 곽 같은 건물마저 준공검사 미필인 채로 여태 방치 했겠나?” 제풀에 화가 치밀어 연구실의 주인은 자리를 떠서 휭 하니 문을 열고 주전자를 달랑거리며 나가 버린다. 머쓱한 친구는 멀리 창밖의 관악영봉(觀岳靈峰)을 바라본다. 삐딱하니 경복궁을 어기죽 내려다보는 폼이 어쩐지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 바로 코앞의 오동나무는 숨을 죽인 체 거무칙칙한 겨울옷을 죽죽이 껴입고 얼어붙은 듯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아-아- 숨이 막힐 것 같다. 소리를 지르자니 손님 주제에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 같고, 잠깐 눈을 돌리니 이제껏 열을 올리던 이방의 주인이 만지작거리던 컴퓨터 화면이 호박색 눈알들을 잠시도 멈추지 않고 깜빡인다. 뭐라고 하나? ‘오동교수의 연구실’이라. 어디에 무슨 잡문을 쓰는가보다. 교수가 연구는 않고 무슨 잡문? 눈을 돌려 벽을 바라본다. 대 여섯 칸 쯤 보이는 이방에 빼곡 들어찬 책들은 언제 볼 텐가? 아니 이 조그만 방에 웬 놈의 책상과 의자들이 열댓 명도 더 앉을 수 있겠네. 마침 주인이 돌아오니, “자네 이 책들 다 읽었나? 그리고 자네 혼자 이 많은 의자랑 책들은 다 벌려 놓고 무엇에 쓰는 건가? 그리고 저 벽에 잘 생긴 할아버지는 자네 춘부장이신가?” 속사포처럼 쏟아 붓는 질문에 정신을 못 차린 주인은 눈이 둥그레 일순 말문을 못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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