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몸 받지 않음을 스스로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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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몸 받지 않음을 스스로 아느니라.”
  • 관리자
  • 승인 2007.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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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 부부 이야기

우리 부부 이야기를 하자면 20년 전으로 기억을 더듬어 가야 한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 했던가! 하지만 물리적 세월이 20년일 뿐이지 엊그제 일인 것 같다. 우리는 대학 동문이다. 남편은 미술학도로서 장래 화가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그림을 하는 학생이었고, 기어이 지금까지 한눈 한번 안 팔고, 화가의 길을 당당히 걷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불교학도이고 그 당시 시대상황에 저항하며 학생운동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소위 운동권 여학생이었다.

서로 가는 길과 이상은 달랐지만 우리의 공통점은 남편은 진리에 대한 갈증을, 나는 구도의 열정을 가슴에 늘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열망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았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모든 것을 접고, 사랑을 선택하여 동기들 중 일등으로 결혼을 하였다.

남편의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다. 하지만 남편은 진리에 대한 갈증이 컸고, 기독교에서는 해답을 찾지 못하였던 것 같다. 아내인 내가 불교학을 한 탓에 자연히 불교와 접할 기회가 많았다. 남편은 어떤 계기가 있어 수승한 선배를 찾아뵈었고, 그 선배의 몇 마디 말씀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불교에 귀의하였고, 그 길로 공부를 하기 위해 스승을 찾아뵈었다. 당시 스승께서는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계셨지만, 스승의 인가를 받아 공부가 시작되었다.

남편이 공부를 시작할 무렵은 신혼 초였는데, 남편의 초발심은 흰 천에 물이 잘 들듯 가뭄에 단비 만난 듯했다. 우리 부부는 저녁마다 밥상을 펴놓고 깨달음의 길잡이가 되는 경전을 공부하였다. 그 기억이 지금도 잊혀 질수 없는 공부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서로 공부하는 도중에 “선재! 선재!”라고 격려도 하고, 공부가 미진할 때는 “중생! 중생!” 해가며 우리의 공부는 미세한 부분을 터치해 가며 그렇게 지금도 이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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