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씨 뿌릴 때를 놓치면 아니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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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씨 뿌릴 때를 놓치면 아니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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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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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뵙고싶은 큰스님, 해안 스님

해안 큰스님은 1901년 전북 부안 출생, 1914년 부안 내소사에서 만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1917년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백양사에서 사미과를 수료하고 백양사 광성의숙에서 보통과를 수료하였다. 1918년 성도절 용맹정진에 참례하여 은산철벽 화두를 통해 심전개오(心田開悟), 1920년 백양사 지방학림에서 중등과 및 사교과를 졸업하고 1922년 경성 불교중앙학림을 졸업하였다. 1922년 백양사에서 대선법계 품수. 1925년 북경대학에서 2년간 불교학 연수 후 귀국, 1927년 백양사에서 중덕법계 품수, 1927년 내소사 주지 취임, 1932년 계명학원 설립하여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1935년 서래선림 창립 지도 육성. 백양사 본말사 순회포교사에 취임, 1936년 백양사에서 대덕법계 승수, 1945년 종사법계를 승수하였다. 1945년 금산사 주지, 1946년 금산사 서래선림 조실로 추대됨, 1950년 내소사 서래선림 조실로 주석, 1969년 불교전등회 대종사에 추대되었으며, 1974년 월명선원에서 수선안거 이래 36번째 하안거를 성만하였다. 1974년 변산 서래선림에서 세수 74세, 법랍 62년으로 입적하였다. 저서로 『해안 강의 금강경』과 시집 『시심시불(是心是佛)』 『마음과 부처』 『해안집』 등이 있다.

- 불교전등회에서 펴낸 해안집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혜산 스님과 동명 스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지식이 함께 정진하는 것과 아닌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선지식과 함께 정진하면 힘이 절로 납니다. 게다가 어찌나 간곡하게 설법을 해주시는지 듣고 있다 보면 눈물이 절로 나고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게 됩니다. 은사스님을 시봉하면서 수행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제 일생의 보람입니다.”

생전의 해안 스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수제자인 혜산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해안 스님의 인품과 수행력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견성한 도인으로 존경받았던 해안 스님은 누구든지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일주일만 용맹 정진하면 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럼 도인의 평소 살림살이는 어떠했을까. 스님의 일과는 한결같았단다. 먼저 관음예참을 하고 원각경 보안보살장을 암송하신 다음 선정에 드셨다. 아침 공양 후 대중과 차를 마시며 좌담설법, 정진법회 때는 대중과 모든 일과를 함께 하셨고, 저녁 예불 끝에는 반드시 금강경을 독송하셨다.

혜산 스님께서 들려주신 6.25사변 때 있었던 일화 한 토막,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떠났는데 해안 스님께서는 서래선림에 홀로 남으셨다. 때마침 감나무 묘목을 접목할 시기가 되어 태연히 감나무 묘목에 접붙이고 계셨다.

그것을 본 동리 노인이 “스님, 피난은 가지 않고 뭘 하시오?” “감나무를 접붙이지요.” “아니 이 난리통에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접은 붙여서 뭘 하게요.”“그건 모르는 소리지요. 농부는 씨 뿌릴 때를 놓치면 아니 되듯이 이 감나무는 지금 접을 붙이지 않으면 버리게 되지 않겠소.” “그러다가 총에 맞아 죽으면 어쩔려고요?” “어찌 노인은 죽는 것은 알면서 사는 것은 모르오?” “…” “감나무야 사람이 죽고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겠소? 우리가 못 따먹게 되면 다른 사람이 따먹을 것이고, 다른 사람도 못 따먹으면 까막까치라도 따먹게 될 게 아니오. 그러면 되지 않겠소?” “…” 이 말에 촌로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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