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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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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뵙고 싶은 큰스님/ 동산 스님

동산 스님 1890년 충북 단양 출생, 경성의전을 졸업하였으며, 1912년 범어사에서 용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하였다. 범어사 강원 수료, 금강산 마하연 등에서 수십 안거를 성만하였으며, 1927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오도하였다. 범어사 조실(1935년). 해인사 조실(1936년), 1936년 용성 스님에게서 칠불계맥을 전수받았고, 흐트러진 승단의 계율을 바로잡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철저한 승단정화정신은 오늘날까지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계종정을 역임한 스님은, 자비심, 평등심으로 법문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법을 베풀어주셨다. 성철 스님, 광덕 스님 등을 위시하여 100여 명이 넘는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두었으며, 수많은 대중들이 따랐다. 입적에 드시기 직전인 1965년 3월 15일 범어사 금강계단 보살계 산림을 주관하시고, 3월 23일 범어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53년으로 열반에 드셨다.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먼저 불교 경전을 공부하라”는 오세창 선생(동산 스님의 고모부, 독립운동가)의 조언에 힘입어 용성 스님을 찾아뵌 스물 네 살 청년이 곧바로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의 꿈을 접고 삭발 출가, 한평생 부처님처럼 만 중생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길을 올곧게 걸으신 분이 바로 동산 스님이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고, 하나를 알면 백 가지를 깨우친다는 말이 있듯 동산 스님은 경학과 계율, 선 수행에 있어서도 매우 철저하고 특출하였다. 또한 한없는 자비심, 보살행으로 말미암아 자비보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동산 스님께서 법회를 열면 대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그 사찰이 3년 먹을 양식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로 지혜와 복력을 두루 갖추셨다.

특히 동산 스님의 제자 사랑, 수좌들을 아끼는 마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부산 범어사 금어선원(청풍당) 조실로 계실 때 당신은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시면서도 찾아오는 수좌들을 모두 받아들이셨다.

당시 살림을 맡은 원주스님은 늘어나는 수좌들 때문에 공양 때마다 쌀 걱정을 하였다. 하루는 쌀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손수 노구를 이끌고 부산 시내에 나가 화주를 받아 걸망 가득 쌀을 담아 짊어 오셨고, 개인적인 약값까지 수좌들에게 내놓으실 정도였다.

늘상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요, 선지식을 찾아 힘써 닦아야 함을 강조하신 동산 스님은 사람의 근기에 따라 이끌어 주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파격적으로 그날 막 출가한 행자나 재가불자를 선방에 들인 적도 있었다. 문하에 성철 스님, 광덕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수두룩 배출된 것도 다 스님의 혜안과 지도력 덕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광덕 스님만 해도 동산 스님의 배려 덕분에 출가 전에 이미 스님들이 수행하는 금어선원에서 정진할 수 있었고, 훗날 한국불교 대중화의 선구자로서 우리 시대를 밝히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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