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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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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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구름처럼

해인사 행자실. 삼십 여 명이 한 방에 북적거리며 살던 시절입니다. 온종일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지쳐 골아 떨어져도 생체 시계는 여지없이 작동하여 새벽 두시 반이면 잠을 깨웁니다.

행자반장이 죽비를 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그 미세한 소리가 어떻게 행자들의 귀에 들리는지 오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시 반에 일어난 우리 행자들은 수각으로 가 세수를 합니다. 세수에 앞서 쇠솔처럼 강력한 칫솔로 이를 닦습니다.

이야기 나온 김에 한 말씀. 스님들 치아가 좋지 않은 건 너무 많이 닦기 때문입니다. 특히 출가 초기에 주로 이를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중이나 천도재 지낼 때 들어온 싸구려 칫솔로 하루 다섯 번 이를 닦아냅니다. 아니, 아예 깎아냅니다. 새벽 예불 전에 한 번, 세 끼 공양 후 각 한 번, 삼경(9시) 종 치기 직전에 한 번, 이렇게 다섯 번이나 변변찮은 칫솔로 벅벅 문질러대니 치아가 튼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금방 닳아버리게 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전국 사찰의 원주스님께 부탁드립니다. 부디 불쌍한 행자들에게 제대로 된 칫솔을 좀 사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세수를 마친 행자들은 행자실 밖에서 순서대로 줄을 서 기다립니다.

봄·가을·겨울에는 날씨가 춥기 때문에 행자들이 동절기용 행자복을 입어야 하는데, “춥고 배고파야 도닦을 마음이 난다.”는 옛 어른의 말씀 때문에 춘추복이나 하복으로 추위와 맞서야 합니다. 어느 절 행자실이 사계절 행자복을 갖추어 두겠습니까?

드디어 도량석이 울리면 줄을 맞춰 강당으로 갑니다. 당시 해인사는 행자들이 강당에서 따로 예불을 했었습니다. 도량석과 종송이 끝나고 이어 사물을 칩니다.

법고·목어·운판·범종이 울리는 동안 행자들은 무수히 절을 합니다. 시간으로 따져보면 적어도 108배를 두 번 가량 할 시간이 됩니다.

승려생활 잘 하게 되기를 발원하며 참회하는 것이지만, 설령 그러한 참회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산사의 추위는 절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분위기로 인해 저절로 절을 하게 됩니다.

我今淸淨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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