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당집(逍遙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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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당집(逍遙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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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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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세계

소요당집은 서산청허의 제자인 소요태능의 시문집이다. 기(記)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가 200여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의 게송을 통하여 소요태능의 선법에 대하여 음미해 보기로 한다. 게송의 특성상 내용을 되살리려고 곳에 따라서 다소 의역을 가하였다. 소요당집은 다음과 같이 편집 구성되어 있다.

먼저 3개의 서문이 있다. 곧 항양거사(恒陽居士) 여규형(呂圭亨)이 중간(重刊)에 즈음하여 붙인 서문과, 소요태능 대사의 시집에 해좌산인(海左散人) 정범조(丁範祖)가 붙인 서문과, 사남 거사(沙南居士) 완산(完山) 이윤상(李輪祥)이 붙인 서문이 있다.

소요태능의 제11세 법손인 예운혜근(猊雲惠勤)이 쓴

『소요대선사행장(逍遙大禪師行狀)』과,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 서문을 곁들여 쓴 『소요비명(逍遙碑銘)』과, 홍문교리(弘文校理) 유하원(柳河源)과 통주 거사(通洲居士) 유사형(柳士衡)이 각각 쓴 『상찬(像贊)』과, 서문을 쓴 백헌(白軒)의 제6세 후손으로서 순창 군수였던 이면휘(李勉輝)가 쓴 발문(跋文) 등이 있다.

소요태능(1562~1649년)은 담양에서 태어나 백양사에서 득도하였다. 청허휴정의 준족(俊足)으로서 치열하게 수행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승군에 참여하였으며, 후에 지리산 연곡사에 주석하면서 선(禪)과 교(敎)를 통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하여 소요파(逍遙派)라 불리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소요태능의 선법은 바로 교학을 바탕으로 한 선의 실천이었다. 세수는 88세이고 법랍은 67세로서 좌탈(坐脫)하였다. 본문

宿西亭

夜寒霜氣重 天遠雁聲高

獨宿西亭月 還山秋夢勞

서정(西亭)에서 묵다

차가운 밤 된서리가 내리고

저 멀리 기러기 날아가는구나

달빛을 보면서 홀로 잠드니

산사의 가을 밤 그리웁구나

賽英俊師

少林消息斷 緬想普通年

積雪空三尺 兒孫兩臂全

영준 스님에게 감사의 화답을 하다

달마대사의 소식도

끊긴 지 오래

양 무제와의 대면이

아련하구나

눈은 내려 허리까지 쌓였건만

후손들의 두 팔은 멀쩡하구나

忘我兼忘世 頹然只一身

夜深風不動 松月影侵人

나도 잊고 세상도 잊었노라

늙어빠진 이 육신만 남았네

밤 깊도록 바람은 멎지 않고

솔가지에 걸린 달 나를 감싸네

洗鉢焚香外 人間事不知

想師捿息處 松檜鏡凉思

바릿대 씻고 향을 피울 뿐

세상일일랑 잊은 지 오래

영준 스님 머무는 그 곳은

낙락장송 우거졌겠소

菜根兼葛衲 夢不到人間

高臥長松下 雲閑月亦閑

풀 뜯어먹고 누더기 걸치니

세속사는 아예 꿈조차 않네

노송 아래 길게 누워 있자니

구름과 달조차 한가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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