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 지혜(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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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 지혜(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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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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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설법: 고엔카 위빠사나 수행 10일 법문/ 세 번째 법문

셋째 날이 끝났습니다. 내일 오후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의 세 번째 분야인 지혜(慧)의 분야로 들어갈 것입니다. 지혜가 없다면 수행의 길(道)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계를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수행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려는 것을 삼가하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마음 속에 번뇌를 계속 일으킴으로써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통제하고 일어난 번뇌들을 가라앉히는 수행, 즉 선정을 수련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번뇌를 가라앉히는 것이 번뇌를 제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번뇌는 무의식 속에 남아서 자기 자신을 계속 해롭히면서, 거기서 증식합니다. 그러므로 법의 세 번째 단계인 지혜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번뇌에게 자유 허가증을 주는 것도 아니고, 번뇌들을 가라앉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번뇌들이 일어나고 소멸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번뇌가 소멸되었을 때, 마음은 마음의 오염들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마음이 청정해졌을 때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우리는 다른 이들을 해롭게 하는 행위를 삼가합니다. 왜냐하면 청정한 마음은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을 위한 선의와 자비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하는 행위를 삼가합니다. 그 때 우리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수행 길(道)의 각 단계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계를 통해 바른 마음집중인 선정의 계발로 나아가고, 선정을 통해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지혜의 계발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지혜를 통해서 열반과 모든 번뇌로부터의 해탈,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지혜(慧, Panna)

지혜(Panna)의 부분에는 여덟 가지 고귀한 길(八正道) 중에서 두 가지가 포함됩니다.

7) 쌈마 쌍깝빠(Samma-san-kappa)는 바른 생각을 말합니다. 지혜를 계발하기 시작하기 이전에, 사고의 전 과정이 멈춰지리라는 기대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은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사고의 유형이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의 표면 층에 있는 번뇌들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 때문에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욕망이나 혐오, 무지와 같은 생각들 대신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 즉 법에 대한 생각, 건강한 생각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8) 쌈마 딧티(Samma-ditthi)는 바른 이해를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단지 드러나는 것으로서가 아니고, 있는 그대로서의 본질적인 실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혜(Panna)의 계발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숫따-마야(suta-maya panna)인데, 다른 이의 말을 읽거나 들어서 얻은 지혜(聞慧, 혹은 聞所成智)입니다. 이렇게 얻은 지혜는 우리를 올바른 방향에 두기 위해서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만으로는 해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빌려온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믿지 않는 것이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 것이라는 두려움에, 맹목적인 믿음에, 혹은 혐오감 때문에, 그리고 또한 믿는 것이 우리를 천상으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과 욕망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자기 자신의 지혜가 아닙니다.

들어서 얻은 지혜의 역할은 그 다음 단계인 찐따-마야 빤냐(cin-ta-maya panna), 즉 지적인 이해(思慧, 혹은 思所成智)로 인도해야만 합니다. 이성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들었던 것과 읽었던 것이 논리적이고 실제적이며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그것을 점검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이성적 이해는 물론 중요합니다만, 그것이 그 자체로 끝이라고 간주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지적인 지식을 많이 쌓은 뒤, 그 스스로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자부한다고 합시다. 이 때 그가 배운 모든 지식들은 오히려 그의 에고를 강화시키는 데만 쓰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그는 해탈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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