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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승인 200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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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몇 년 전 봄이다. 그 때 나는 설악산 속 백담사에 기거하고 계신 노스님을 만나 뵈려고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로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지하통로를 통해 큰길을 건너가려고 계단을 내려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작은 광경이 있었다. 한 노숙자가 지하통로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술을 잔뜩 마셨는지 잠든 얼굴은 넋이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것 같았다. 얼마나 머리를 안 감았는지 때가 덕지덕지 묻은 채로 마구 헝클어진 산발 아래로 금방이라도 땟국물이 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은 두꺼운 겨울 외투가 보였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밤이나 새벽에는 몹시 추운 때건만 잠든 그이는 추운 것도 모를 것이었다. 두꺼운 외투 아래로는 목까지 차오르는 털스웨터가 무슨 색깔인지 알 수가 없고 허리춤 아래로는 응당 바지는 바지로되 바지다운 탄력을 잃은 지 오래, 닳아버린 노숙인의 몸뚱이를 우겨 넣은 푸대 자루나 다름없었다.

나의 시선은 그 푸대 자루를 타고 흘러 내려가 잠든 사람의 발로 옮겨갔다. 그런데, 그 발은 시커먼 맨발 그대로였다. 얼마나 씻지 않았던지 사람의 발이라고 할 수 없는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던 그것은, 그래도 발이라고 발톱 흉한 발가락 다섯 개가 얼기설기 달려 있고, 퉁퉁 부은 발등일망정 발등이라고 할 만한 것도 있고, 쩍쩍 갈라진 피부 틈새로 새까만 때가 껴 있었다. 너덜너덜한 바지 아래로 삐죽 튀어나와서는 지하통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것 같은 노숙인의 두 발.

나는 지하통로 한쪽을 막아서고 있는 그 발을 스치듯 돌아 지나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티켓을 끊어 버스에 올랐는데, 이상하게도 금방 스쳐 지나갔던 노숙자의 새까만 두 발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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