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뜨락
소나무 더욱 몸 기울여 좋은 날
구름 속에 들어가 잠들고 싶네.
비 그친 하늘 푸른 구름 열치고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운문사
이끼와 천둥이 싸우는 방에 들어
물 한 잔 얻어마시고 좌선하고 싶네.
운문리(雲門里) 가보니
소나무들이 구불구불 서서
그 안으로 길을 열어주고 있었네.
함께 쉬고 싶은 사람 만나서 차라리
혼자 들어가 문 닫아 걸고
세상 무소식으로 밥 끓여 먹으며
복사꽃빛 얼굴 둥둥 떠 지나가는
학인 비구니 스님 모습 보고 있으면 좋으리
달도 어느새 여기 와서 머리 깎고 산을 넘으며
그네들 슬쩍 훔쳐보고 웃음 흘리네.
이 속에 들어 모두 늙지 않을 때
오히려 나 혼자 늙어 꽃처럼 오그라들어
세상 향해 두 발만 내보이고 싶네. -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세계사, 200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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