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가장의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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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가장의 겨울나기
  • 관리자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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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겨울이 가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테러니, 게이트니 하며 워낙 세상 일이 시끄러워서인지 특별한 추위도 폭설도 없이 지나간 겨울이었다. 그래도 한겨울 그늘진 곳에서 손이 트고 동상이 걸리는 삶이 있다.

서울 종암동, 사람 한 명 지나다닐 만한 골목에 위치한 이봉순(71세) 할머니 댁을 찾았다. 방에 들어서는 낡은 미닫이 문의 나무가 위아래로 뜯겨지고 닳아서 제대로 열리지가 않았다. 좁은 방안은 네 식구의 잡동사니로 어지럽게 널려져 있어 더욱 작아 보였고, 난방을 최대한 절약해서인지 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할머니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네 식구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평생 동안 고생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아온 삶이었다. 경남 거창의 종손집 며느리로 들어가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네 살박이 아들을 남겨두고 남편이 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병원비로 모든 재산을 날리고, 보따리 하나 싸서 아들을 업고 상경했다. 그리곤 고생이었다.

“하루종일 야채 장사를 하고 시금치처럼 축 늘어져 집에 돌아와 보면, 아들이 밥도 못 먹고 방 구석에 앉아 이 에미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워낙 못 먹은 탓에 약골인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또 다음 날이면 아이를 혼자 떼놓고 장사를 나가야 했지요.”

할머니의 고생을 아는지 아들은 문제 한번 일으키지 않고 바르게 커주었다.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떡 하니 할머니 품에 안겨 주었다. 아들은 영업용 택시를 몰며 한 가정을 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없는 살림이었지만, 할머니는 집안 일을 거들거나 귀여운 손주, 손녀의 뒷바라지나 하며 여느 노인들과 같이 평범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지면서 가정의 행복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경미한 사고라 금방 쾌차할 것 같은 아들이 원인도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 다리는 나았지만 살이 점점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택시 운전은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그 이후로 작은 골방에 누워 꼼짝을 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할머니는 그 모든 게 어려서 제대로 먹이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한다.

급기야 작년 4월에는 모든 생활고를 짊어졌던 며느리가 집을 나가 버렸다. 한창 민감한 시기에 그 충격을 못이겼던지,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손자 용오(18세)가 자퇴를 하게 되었다. 물론 가르칠 형편도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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