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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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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로 가려뽑은 경전말씀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성형과 살빼기, 건강요법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몸가꾸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현대인들에게는 몸이야말로 인생이라는 벤처에서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재산이며 신중한 관리 대상인 것이다. 불교는 몸에 대해서 비교적 냉정한 시각을 갖고 있어서 초기경전의 도처에서는 “몸은 중생을 유혹하는 악마의 갈고리’, ‘몸은 고통의 그릇’이라고 설하며 이 몸 즐겁자고 추구하는 욕망이야말로 업과 번뇌의 원인이라는 서늘한 경계를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불교수행자들은 몸을 조복 받고, 몸의 청정을 위해서 고행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몸은 번뇌와 고통의 덩어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경우, 몸은 단지 버려야 할 깨진 그릇에 불과한 것일까? 분명히 아니다. 불교는 이 몸 즐겁자고 하염없이 쌓아가는 악업의 도미노는 명백히 거부된다. 하지만 또 다른 방향에서는 이 몸이야말로 부처가 되는 그 날까지 잘 이끌어야 할 수행의 밑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렵지만 불법은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라는 정형구가 대장경의 숲에는 가득한 것이다. 몸은 가장 극명하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이율배반의 양향성을 보여주는 위력적인 업력의 실현체이므로 오히려 마음보다 더욱 더 깊고 밀도 있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불교 수행의 최초의 출발점은 바로 몸으로 인한 악업의 연쇄작용을 끊고 이 몸을 지혜의 그릇으로 사용하는 데 있다.

선사께서 항상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비록 몸의 주인이지만 몸이 마음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心雖是身主 身要作心師). 그대들이 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근심할 것이지 어찌 도가 그대들을 멀리하랴. 설사 무지렁이라고 할지라도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구하면 마음도 따라오니 도사와 교부 같은 위대한 사람인들 어찌 종자가 따로 있겠는가!”*

무염, 남포 성주사 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밀린다 왕이 물었다.

“나가세나 존자여, 출가한 자에게 육신은 소중합니까?”

“아닙니다, 출가한 자는 육신에 애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대들은 육신을 아끼고 사랑합니까?”

“그대는 싸움터에 나가 화살을 맞은 일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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